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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동네방네]신림동 고시원 화재 이재민, 44년만에 주민증 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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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 지난해 화재 현장서 무호적자 발견

복자사각지대 발굴서 대상자 맞춤형 지원 나서

이데일리

서울시 관악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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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지윤 기자]“고시원 화재가 희망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신림동 고시원 화재 사고 당시 복지사각지대에서 발굴된 이모씨(44세·남)는 지난 17일 박준희 서울 관악구청장을 만나 주민등록증을 전달받는 자리에서 “세상에 태어난 지는 44년이 되었지만 신분증을 발급 받은 오늘이 행정상 처음 태어난 날”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 씨는 지난해 4월 신림동 고시원 화재 당시 이재민 구호 과정에서 발견된 무호적자이다. 5살 무렵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멀리 여행을 가자는 아버지의 말씀에 함께 버스에 올라탄 뒤 부모의 유기로 미아가 돼 보육시설에 입소했다. 중학생 시절까지 그 곳에서 보냈지만 동급생의 폭행과 구타가 심해지면서 시설을 나올 수밖에 없었고, 이후 봉제공장 등을 전전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이 씨가 주민등록이 돼 있지 않은 점을 악용해 함부로 대하거나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피해를 당해도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가 없었고, 다치거나 아파도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 병원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먹을 수밖에 없었다.

3년 전 이 씨는 스스로 가족관계등록 창설을 시도했으나 절차에 필요한 각종 서류 준비와 인우보증을 작성하는데 가로막혀 결국 포기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던 중 지난해 4월 신림동 고시원 화재 발생으로 뜻밖의 기회를 잡게 됐다. 관악구에서 이재민 현황 파악과 지원 과정에서 이 씨가 무호적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고, 구는 이 씨를 돕기 위해 즉시 복지정책과 내 테스크포스(TF팀)을 꾸렸다.

우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성·본 창설이었다. 이 씨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은평구의 보육시설과 부산 소년의집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토대로 교육청 및 관계 기관의 협조를 얻어 그에 대한 기초 자료를 확보했으나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마지막 준비서류인 이 씨의 신분을 확인해줄 수 있는 보증인을 세워야 하는데, 인우보증을 해주겠다는 지인이 아무도 없었다. 이에 이재민 구호과정에서 수차례 상담 등을 진행하며 이 씨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관악구 복지정책과장과 복지기획팀장이 연대보증을 해주며 실타래를 풀어갔다.

지난해 5월 가정법원에 성·본 창설 허가신청 접수를 시작으로 수차례 법원을 방문하며 서류를 보완하는 등 행정적 지원덕에 마침내 이달 이 씨의 주민등록증이 발급됐다.

구는 이 씨를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책정해 생계비, 주거급여, 의료급여 등 경제적 지원과 후에 일자리 연계 등 맞춤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이날 주민등록증을 직접 전달하는 자리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 떳떳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며 앞으로 펼쳐질 창창한 미래를 무한히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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