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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여순사건 희생자 재심 재판 첫 무죄 선고···재판부"너무 늦어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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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2일 오후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여순사건 희생자 고 장환봉씨의 부인 진점순씨(98·가운데 앉은 이)가 남편에 대한 무죄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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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전 여순사건 당시 내란죄로 구속돼 처형된 철도기관사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김정아 부장판사)는 20일 내란죄와 국권 문란죄로 사형이 집행된 고 장환봉씨(당시 29세)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장씨는 1948년 10월 여순사건 당시 철도기관사로 일하던 중, 여수에서 ‘제주 4·3 사건’ 진압명령에 반발해 봉기한 국방경비대 14연대 군인들이 순천에 도착한 후 이들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계엄군에 체포돼 22일 만에 처형됐다.

이 사건에 대해 장씨의 딸 장경자씨(75)가 억울하게 숨진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며 재심을 청구해 대법원이 지난해 3월 재심개시를 결정하면서 4월부터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재심이 시작됐다. 이날까지 7차례 재판이 진행돼 무죄판결이 나왔다.

재심 재판에서 검찰은 ‘판결문’ 등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으나 뒤늦게 당시 군법회의 ‘형집행 명령서’ 등을 확보해 장씨에 대한 공소사실을 확정했다.

검찰은 ”14연대 군인들이 전남 여수시 신월리 여수 일대를 점령한 후 1948년 10월 20일 오전 9시 30분쯤 열차를 이용해 순천역에 도착하자 이들과 동조·합세해 순천읍 일원에서 국권을 배제하고 통치의 기본질서를 교란한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 공소 요지를 확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내란죄는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고, 국권문란죄는 미군정 때 제정돼 이미 효력이 종식된 ‘포고령’에 적용한 것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도 지난해 12월 열린 6차 재판에서 “내란죄와 국권문란죄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면서 무죄 선고를 요청했다.

이날 무죄를 선고한 김정아 부장판사는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고 장환봉님과 유족께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었음을 뒤늦게 밝히며 깊이 사과 드린다“면서 ”장환봉님은 좌익도 아니고 우익도 아니며, 오로지 국가가 혼란스럽던 시기에도 몸과 마음을 바쳐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자 했던 명예로운 철도 공무원이었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70년 지난 오늘 유죄 판결이 잘못됐다고 선언했다“면서“사법부를 대표해 더 일찍 명예회복에 힘쓰지 못한점을 사과 드린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배명재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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