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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신격호 별세]황각규 부회장 "고인은 '소비자의 즐거움' 가치를 꿰뚫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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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20일 빈소서 일화 소개

제철사업 준비했으나 고배… 정부에 사업계획서 넘겨

30년 쌓은 그룹 현금의 2.5배 달하는 자금 국내 투자

고궁으로는 안 돼… 롯데월드 및 전망대 건설 강력 추진

이데일리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이 20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빈소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고인의 업적 등을 말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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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무연 이윤화 기자] “신격호 창업주는 그룹의 발전은 물론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하신 훌륭한 분이다”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은 이날(20일) 오후 3시 13분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은 취재진을 상대로 “그분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할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던 분”이라면서 알려지지 않았던 고 신 명예회장의 일화를 밝혔다.

◇ 한국 투자 적극적… 제철 사업계획서 정부에 넘기기도

황 부회장은 고 신 명예회장이 일본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한국에 투자해 한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단 점을 분명히 했다. 고 신 명예회장은 1946년 일본에서 화장품 사업을 시작해 자리를 잡았고 이후 츄잉껌 생산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100년 역사를 가진 일본 초콜릿 기업이 버티고 있는데다 투자가와 직원들까지 만류했지만 특유의 뚝심으로 초콜릿 부문으로 판을 넓혀 성공 가도를 달렸다.

자리를 잡은 고 신 명예회장은 한국에 정유·제철 쪽으로 사업 방향을 확장하기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당시 한국에 물자가 부족했던데다 일본 와세다대 화학과를 졸업한 고인의 이력이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정유사업은 LG의 몫으로 돌아갔다. 제철사업 진출을 위해 일본 롯데 안에 50여 명으로 꾸려진 TF팀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국가 주도 하에 시행해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뜻을 꺾진 못했다.

다만 고 신 명예회장의 뜻은 우리나라 철강 사업의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것이 황 부회장의 설명이다. 황 부회장은 “포항 제철에 제1고료의 레이아웃이 일본의 제철소 레이아웃과 똑같다고 하는데, 당시 TF팀 50명이 검토한 사업 보고서를 그대로 한국 정부에 전달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실제로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고향이 양산이고 창업주의 고향 울산이 가까워 두터운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와 제철사업 진출에서 고배를 마신 고 신 명예회장은 다시금 백화점 사업으로 국내 투자를 진행할 계획을 세웠다. 한국에 백화점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롯데쇼핑센터를 설립했다. 당시 롯데그룹이 보유한 잉여금은 170억엔 수준. 그러나 투자금액은 2배를 훌쩍 넘는 400억엔 수준이었다. 30년 간 쌓아온 그룹의 현금성 자산에 2.5배에 달하는 거금을 한국 시장에 투자한 것이다.

황 부회장은 고 신 명예회장의 이러한 결정이 단순히 이익에 따른 결정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황 부회장은 “당시 대한민국 경제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외국인의 직접 투자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다”면서 “1978년 기록에 따르면 당시 외국인 직접 투자의 70% 정도가 롯데가 일본서 한국에 가져온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당시 창업주께서 일본보다 한국에 투자하는 게 자본 수익률이 좋겠다 판단했겠지만, 이는 상당한 도전의 역사라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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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별세했다. 향년 99세. 사진은 2017년 5월 3일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한 신격호 명예회장.(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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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자의 즐거움에 기업 장래성 있다고 판단

고 신 명예회장은 소비자의 즐거움이 곧 기업의 장래와 결부된다는 소신을 가져왔다고 황 부회장은 회고했다. 그는 “과거 창업주께서 캐나다 테마파크에 상당한 감명을 받고, 한국에도 고객의 즐거움을 주는 곳이 장래성이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롯데월드타워 탄생에 얽힌 일화를 전했다.

황 부회장에 따르면 고 신 명예회장은 한국에 방문했을 때 볼거리가 고궁 밖에 없다는데 아쉬워했다. 한국에도 사람들이 찾을 역작을 남기고 싶었던 꿈이 고인에게 있었던 게 아닐까 황 회장은 추측했다. 그는 “수익성 문제도 있었지만 저희는 물론 신동빈 회장께서도 창업주 뜻 거역은 어려울거 같다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국민들이 모두 즐길 수 있는 롯데월드타워를 건설하는데 역량을 쏟았다”고 회고했다.

1979년 소공동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을 시작으로 하노이 롯데센터, 롯데월드타워에 설치된 전망대 역시 고 신 명예회장의 지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황 부회장은 “명예회장님께서는 전망대는 돈은 못 벌지만 소비자들이 보고 즐기며 장기적으로 롯데에 좋은 이미지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면서 “소위 말하는 즐거움이 소비자들에게 주는 즐거움에 대해서 많은 인사이트가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황 부회장은 지금 같이 시장 상황이 역동적으로 변하는 시기에 고 신 명예회장이 남긴 도전 정신은 소중한 유산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창업주께서는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수많은 역경을 넘어가는 도전의 연속이며, 도전을 멈추면 기업은 스톱이라는 말을 자주하셨다”며 “창업주께서 남겨 주신 소중한 유산을 저희들이 잘 이끌어 가서 글로벌 롯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다만 고인의 가족 및 재산 관련 문제에는 언급을 피했다. 황 부회장은 “고인이 유언을 남겼는지에 대해선 이 자리에서 말하기 어렵고, 상속 문제 역시 받으실 분들끼리 논의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을 아꼈다. 고 신 명예회장이 남긴 재산 규모는 약 1조원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고 신 명예회장은 앞서 지난 19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숙환으로 오후 4시 29분 별세했다. 향년 99세. 오는 22일 오전 6시 10분 발인을 진행하며, 운구 차량은 잠실롯데타워를 한 바퀴 돌고 장지인 울산 울주군으로 향할 예정이다. 이날 빈소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해 장남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비롯해 신격호 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 등 일가족이 자리를 지켰다. 고 신 명예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는 지난 19일 밤 11시 30분에 빈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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