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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단독] “삼성 준법감시위, 1회성 이벤트 아니길”…현직 판사, 법원 게시판에 우려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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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수 부장판사, 코트넷에 공개글

실효성 확보 어려운 이유 분석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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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부장판사가 삼성그룹이 법원 요구로 만든 준법감시위원회(준법감시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렸다.

20일 <한겨레> 취재 결과, 설민수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51·사법연수원 25기)는 지난 17일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정준영 부장판사님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언론이 보도하는 삼성 준법감시위가 “미국의 독립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와 기능상으로 제일 가까울 것 같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실효성 확보가 어려운 이유를 세 가지로 나눠 조목조목 분석했다.

먼저 설 부장판사는 “준법감시위가 내부 정보에 관해 어느 정도의 접근성을 가질지, 회사에 대한 비밀유지 등에 관해 얼마나 자유로울지 등에 관해 정해진 것이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면면이라도 실제 효과는 낮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사기 사건인 엔론사를 예로 들며, 엔론사의 이사진 또한 “사회적 다양성, 지명도 등에서 최강의 인물로 구성돼 있었다. 그래도 대규모 회계부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내부고발자가 언론에 공개하기 전에는 몰랐다”고 했다.

그는 둘째 이유로 “규모가 크고 속칭 잘나가는 회사에서 특별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외이사가 이를 반대하거나 판단하기 어렵다는 사례는 미국에도 얼마든지 있다”며 “어떤 행위가 위법행위인지 최종적으로 특별히 문제돼 드러나기 전에는 사실 알기가 거의 불가능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지적을 뛰어넘어 문제점을 발견한다 해도, 이를 문제로 판단하거나 지적하기 쉽지 않은 구조를 설명한 것이다.

설 부장판사는 셋째 이유로 “지배 주주는 일종의 원숭이 무리 속에 있는 800파운드짜리 거대 고릴라”라며 “그의 모든 행동을 의심해서 볼 수밖에 없고 지배구조에 관한 독립이사나 어떤 보호장치로도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존재”라고 지적했다. 삼성의 지배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존재가 워낙 막강해 어떤 장치로도 견제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설 부장판사는 삼성의 준법감시위가 미국 연방양형기준에 나오는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과도 거리가 있다고 짚었다.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은 개인이 아닌 회사를 기소했을 때 양형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로, 이 제도도 마저도 최근 활용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제도 활용도가 침체되는) 주 원인은 미국 법원이 회사 피고인에 대해 감경 요인으로 적용하지 않고 무시해서다. 2016년에는 신청한 47건 중 1건, 2017년에는 48건 중 0건에 대해 적용했다”고 했다. 앞서, 정준영 부장판사는 미국 연방양형기준에 나오는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예시로 들면서 준법감시위 설치 및 운영을 권고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설 부장판사는 “제가 아는 정준영 부장판사님께서는 외국의 제도를 한국의 척박한 현실에 적용해 제도화하려고 그동안 남달리 노력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준법감시위도 그런 의미에서 재판과 관련해 1회성 이벤트가 아니었으면 한다”고 글을 끝마쳤다. 설 부장판사는 1999년 대전지법에서 법관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을 거쳐 현재 서울남부지법에서 근무하고 있다.

앞서 지난 17일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최근 삼성이 꾸린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을 점검해 이 부회장의 형량을 정하는 데 반영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첫 재판 때 “(준법감시위 설치가) 재판 결과와 무관하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를 뒤엎은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와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봐주기 재판’, 결론을 정해둔 ‘답정너 재판’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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