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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주총 없이도 증·감자…`자금 블랙홀` 뜨는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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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시장 혁신 현장을 가다 / ② 제도 혁신으로 자본 유치 경쟁 ◆

매일경제

카리브해의 영국령 케이맨제도는 인구 5만명으로 작은 섬나라다. 이 작은 섬의 은행들에 보관된 예금 잔액은 무려 2200조원. 글로벌 헤지펀드 자금 중 60% 이상이 케이맨제도에 둥지를 틀고 있는 셈이다. 이 나라는 법인세가 0%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대표적 조세회피처로 불린다.

싱가포르가 이러한 조세회피처로 몰리는 펀드자금을 끌어들이겠다고 나섰다. 싱가포르 현지 투자회사 고위 관계자는 "정부 주도로 VCC(Variable Capital Company·가변자본 회사) 시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며 "싱가포르에 회사 형태로 펀드를 만들면 케이맨제도·버진아일랜드 못지않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밝혔다.

펀드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회사 형태(뮤추얼펀드)와 트러스트 방식(투자신탁·수익증권) 등 두 가지로 나뉜다. 회사 형태는 주요 의사 결정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다. 반면 수익증권 형태는 투자 행위에 대해 감독당국 규제를 받는다. 따라서 주로 회사 형태를 선호할 것으로 보이지만 일반 국가에서 뮤추얼펀드를 만들면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긴다.

뮤추얼펀드에서는 펀드 자체가 곧 회사다. 이에 따라 펀드 운용자산이 그대로 자본금이 된다. 회사가 자본금을 늘리거나(증자) 줄이려면(감자) 주주총회를 열어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펀드 운용자산은 그 특성상 수시로 규모가 늘거나 감소한다. 운용자산에 변동이 생길 때마다 일일이 주총을 연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일반 국가에선 주로 트러스트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조세회피처는 뮤추얼펀드의 증자·감자가 자유롭다. 케이맨제도에서 회사 형태로 펀드를 만들면 법인세 면제와 함께 자유로운 자본금 변화 혜택을 받게 된다. 글로벌 자본이 조세회피처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싱가포르가 추진 중인 VCC는 결국 캐이맨제도식 뮤추얼펀드다. 조세회피처 펀드에 버금가는 편의성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VCC는 재무제표·주주명부 공시의무도 없다. 투자 업계 관계자는 "조세회피처에 뮤추얼펀드를 설립하면 탈세 등 의심을 받는 일이 생기는 반면 싱가포르는 공신력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며 "싱가포르가 글로벌 자금의 블랙홀로 위용을 떨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 유수의 투자은행(IB)이 싱가포르 VCC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 중에는 한국의 대형 증권사도 포함돼 있다.

[기획취재팀 = 남기현 팀장(싱가포르) / 정승환 기자(샌프란시스코) / 진영태 기자(런던) / 홍혜진 기자(뉴욕·보스턴) /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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