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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시론] 일본 영토·주권전시관의 집단 최면 / 홍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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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홍성근 ㅣ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일본 정부가 20일 새로운 영토·주권전시관 개관식을 열고 21일 일반에 공개한다. 영토·주권전시관은 일본 정부가 2018년 1월 독도 등 영토에 관한 여론 확산을 목적으로 설립한 곳이다. 전시관은 도쿄 시내에 있으나 관람객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관계자들은 전시관이 건물의 지하에 있어 찾기도 어렵고 전시 공간도 협소하다는 등의 지적을 해왔다.

이를 고려한 듯 전시관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일본의 국회와 행정부처가 밀집한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전시 공간도 지상에 마련하고 규모도 약 7배(면적 673.17㎡)나 확장하였다. 옛 전시관에서는 독도와 센카쿠제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관련 자료만 전시했지만 새 전시관에서는 남쿠릴열도 관련 자료도 함께 전시한다. 관계자들은 전시관이 같은 건물에 있는 ‘일본국제문제연구소’(JIIA)와 연계하여 연구소의 연구 성과나 자료를 적극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영토·주권전시관을 운영하는 일본 내각 관방의 영토·주권대책기획조정실에서는 영토문제 담당 장관 아래 국내외 여론 확산을 위해 설치된 영토 및 홍보 관련 전문가 집단의 조언도 받으며 영토 관련 연구 조사 및 교육·홍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영토·주권전시관도 이러한 지원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특별히 새 전시관에서는 학생 등 젊은층에 대한 여론 확산을 위해 동영상 및 체험 시설 등을 강화하였다.

하지만 영토·주권전시관의 전시 자료 중에는 과거 일본 정부가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님’을 명백히 한 1877년의 태정관 지령 등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로지 자국의 입장에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자료들만 전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주로 1905년 일본의 독도 편입 결정 후의 자료나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후의 자료들이다.

그런데 그 자료들을 한겹만 벗겨도 쉽게 역사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 중에 독도를 은밀히 자국의 영토로 불법 편입하고 전쟁에 이용하기 위해 망루를 세웠다. 독도는 일본 해군의 중요한 전략 거점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 언론은 독도를 러일전쟁의 기념 명소로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런 와중에 일본 어업자들은 독도에서 독점적 어업권을 주장하며 강치잡이를 하였다.

일본인들은 19세기 말 조선의 정세가 어지러운 틈을 타서 울릉도에 불법 이주하여 갖은 행패를 부리고 1902년에는 일본인 경찰까지 주둔시켰다. 이미 제집 드나들듯 울릉도를 출입하던 그들에게 독도를 제 욕심대로 하는 데는 거칠 것이 없었다. 일본은 이런 역사를 외면하고 1905년 이래 독도를 마치 평화롭게 실효적으로 지배한 것처럼 역사를 오도하고 있다.

한편 일본은 1945년 무조건 항복 선언으로 한반도와 그 주변 도서에서 쫓겨났다. 1945년 이래 일본을 통치한 연합국 점령 당국도 독도를 일본의 통치 영역에서 제외하였다. 한국의 어민들은 여전히 독도를 실질적으로 이용, 관리하였다. 그런데 1952년 일본 측의 어업 한계선인 맥아더라인이 폐기될 운명에 놓이자 한국 정부는 긴급하게 평화선을 설정하였다. 평화선은 6·25전쟁이라는 긴급한 상황에서 한국의 영역을 보전하기 위해 취해진 자위권적 조처였다.

일본은 평화선 설정 등의 이유를 들며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독도는 평화선 선언으로 한국이 점유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전부터 한국이 계속 영유해오던 땅이다. 오히려 일본이 6·25전쟁이라는 혼란한 틈을 타서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보내어 우리 어민들을 내쫓고 독도 침탈을 시도하는 불법 행위를 자행하였다. 다행히 울릉도 주민들이 나서서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하여 경비하는 등의 활동으로 독도를 지켜낼 수 있었다.

일본의 영토·주권전시관은 이와 같은 역사를 외면하고 자국에 유리하도록 각색한 내용만 전시하고 있다. 그야말로 영토·주권전시관은 역사의 집단적 최면을 조장하는 시설이다. 새 전시관의 개관은 한-일 관계는 물론이고 일본 국민에게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토·주권전시관은 마땅히 폐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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