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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장기기증 유가족 큰 위로… 이식인과 서신 교류 허용을”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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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운동본부 법개정 호소 / 현행법 금전거래 등 부작용 우려 / 기증자·이식인 정보 공개 금지해 / 美 등선 쌍방 원할 때 교류 허용 / “생명 나눠 고맙다는 말 한마디 / 자식 잃은 깊은 슬픔 치유 경험” / 복지부 “무상기증 원칙 유지하되 / 기증 활성화 등 긍정적 효과 검토”

세계일보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뇌사 장기기장인 유가족과 이식인의 교류 막는 장기이식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고 김유나 양의 부모 김제박(왼쪽부터), 이선경 씨와 김유나 양의 신장과 췌장을 이식받은 미국인 킴벌리 오초아 씨와 킴벌리의 어머니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편지를 받고 장기이식 전 투병 생활이 고통의 연속이었다는 얘기에 가슴이 아팠고, 이식을 받고 나서는 아몬드가 든 초콜릿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울컥했어요.”

2016년 사고로 세상을 떠난 딸 김유나양에게 장기이식을 받은 킴벌리(23)를 처음 만난 김양의 어머니 이선경(48)씨는 연신 훌쩍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킴벌리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유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희망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뇌사에 빠진 김양은 킴벌리를 비롯한 20여명의 미국인에게 장기와 조직을 기증했다. 2살 때부터 소아 당뇨로 투병 생활을 했던 킴벌리는 김양에게 신장과 췌장을 이식받은 뒤 건강을 회복했다.

또 다른 장기기증 유가족 장부순(73)씨는 김양 가족과 킴벌리의 만남을 지켜보며 “부럽다”는 말을 반복하며 눈물을 훔쳤다. 장씨는 2011년 뇌사판정을 받은 아들의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하지만 장씨는 아들의 장기가 누구에게 기증됐는지, 이식받은 사람이 잘 지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국내에서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31조(비밀의 유지)가 기증자와 이식인의 정보 공개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씨는 “아들을 먼저 보내고 ‘잘했어’라는 한 마디가 정말 간절했다”며 “그때의 저에게 우리 아들의 생명을 이어받은 누군가가 ‘고맙다. 건강히 잘 살겠다’라는 편지 한 장만 써줬더라면 용기를 얻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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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김양 가족, 킴벌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장기기증 활성화와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유가족과 이식인 간 서신 교류를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뇌사 장기기증자는 2015∼2017년 연간 500명대에서 2018년부터 연 450여명 내외로 줄어들고 있다. 반면 장기이식 대기자는 2015년 2만7000여명에서 지난해 4만여명으로 크게 늘어난 상황이다.

운동본부 측은 “서신 교류가 허용된다 해도 미국처럼 관련 기관을 통하고, 쌍방이 원할 때만 교류를 허용한다면 부작용보다 장기기증 활성화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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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장기기증인 유가족 모임 '도너패밀리' 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장기 기증자·이식인 교류 허가 요청' 기자회견에 참석해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의 교류를 막는 장기이식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뉴시스


이날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모임인 ‘도너 패밀리’(기증자 가족)는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은 이식인이 있다면 서신 교류만이라도 하고 싶다”며 “앞으로 장기기증을 결정할 가족들은 우리와 같은 슬픔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지 않고, 이식인의 편지를 받아 큰 위로와 치유를 경험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달라”고 호소했다. 송범식 신·췌장 이식인 모임 회장도 “제게 장기를 기증해 준 분의 가족에게 생명을 나눠주신 덕에 잘 살아가고 있다고, 한순간도 기증인의 사랑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정부는 금전 거래 등 부작용을 고려해 법 개정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거래 의도가 없더라도 이식인 입장에서 감사 표시를 하고 싶다는 이유로 사례하게 되면 관행으로 굳어질 수 있고, 이것이 금전 거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행법의 의도는 무상기증 원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다만 (서신 교류 등을 통해) 장기기증 활성화와 유가족을 위해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부분은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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