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3 (금)

여순사건 72년 만에 민간 희생자 첫 무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법원, 고 장환봉씨 재심…판검사 전원 사과 “특별법 제정을”

72년 전 ‘여순사건’ 당시 내란죄 등으로 구속돼 처형된 철도기관사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여순사건 희생자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김정아 부장판사)는 20일 고 장환봉씨(당시 29세)에 대한 재심에서 “1948년 당시 군법회의에서 장씨에게 적용한 내란죄 등에 대해 범죄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내란죄에 대해서는 아무런 증거를 찾을 수 없었고, 국권문란죄는 미군정 때 제정돼 이미 효력이 종식된 ‘포고령’을 적용한 것이어서 죄를 물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장씨는 1948년 10월 여순사건 당시 철도기관사로 일하다 ‘제주 4·3 사건’ 진압명령에 반발해 봉기한 국방경비대 14연대 군인들이 순천에 도착한 후 이들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계엄군에 체포돼 22일 만에 처형됐다.

장씨의 재심 재판은 지난해 3월 대법원이 장씨 등 희생자 3명에 대해 “국가공권력이 자행한 학살 희생자”라며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장씨의 딸 장경자씨(75) 등이 2011년 10월 법원에 재심을 신청한 뒤 7년6개월 만인 지난해 4월 첫 재판이 열렸다. 재판과정에서 검찰은 당시 기소장, 공판조서, 판결문 등 재심에 필요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공소사실을 특정하는 데 애를 먹었으나 시민단체와 유족 등이 찾아낸 판결집행명령서 등으로 겨우 공소를 유지했다.

김 부장판사는 “더 일찍 무죄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명예회복에 힘쓰지 못한 점을 사법부를 대표해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걸어야 하는 길이 아직 멀고도 험난하다”며 “여순사건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회복 등을 위하여 특별법이 제정되어 구제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판결을 마친 김 부장판사를 비롯한 배석 판사와 검사, 법원 직원들은 모두 일어나 고개 숙여 사과했다.

배명재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신문 최신기사

▶ 기사 제보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