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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박완규칼럼] 대화가 사라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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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 정국, 여야 대화 실종 / 의회민주주의가 위기 처한 상황 / 4·15총선, 정치 바꿀 절호의 기회 / ‘정치란 무엇인가’란 질문 던져야

로마 공화정 말기에 정치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 체제와 대화·타협의 문화를 지키려고 분투했다. 그는 기원전 44년 원로원 회의에서 당시 집정관이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탄핵하기 위한 연설을 했다.

“귀 얇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명문 귀족이자 큰일을 추구하는 당신들이, 위대하고 고명한 사람들이 늘 경멸하던 돈이나 폭압, 로마 인민들이 결코 참지 못하는 권력을 갈망했다고 저는 믿지 않습니다. 저는 시민들의 존경과 명예를 갈망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명예란 최고 귀족 모두와 대중의 증언을 통해 인정된 올바른 업적의 칭송이며 공적 헌신의 명성입니다.”

세계일보

박완규 논설실장


2000여년 전의 연설이지만 지금 정치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공적 헌신의 명성’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돈이나 폭압, 권력’을 갈망하는가. 의회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은 정치인들이 자성해야 할 때다.

연말연시는 정치적 격동의 시간이었다. 여당이 주도하는 ‘4+1 협의체’가 공직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들을 강행 처리했다. 제1야당은 국회의장석 주변 점거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저지하려 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뾰족한 대책도, 국민을 납득시킬 반대 논리도 제시하지 못한 채 장외투쟁만 이어갔다. 필리버스터를 명분 삼은 여야 의원들의 연설은 한마디로 실망스러웠다. 귀 기울일 만한 말이 없었다. 리더십이 사라진 정치의 현주소다.

여당은 승리했지만 잃은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게 여야 대화다. 기나긴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여야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정치의 기능이 사라졌다. 정치인과 정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의 정치력이 한심한 수준임을 말해준다. 정국을 주도해온 청와대의 책임이 크다. 여당이 하지 못하면 청와대가 직접 야당과 대화에 나서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국회 난맥상을 그대로 방치했을 뿐 아니라 이를 조장하기까지 했다. 실보다 득이 많다고 판단한 듯하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곳곳에서 반목과 갈등이 빚어진다. 부부 사이에서도 정치적 입장을 두고 말싸움이 벌어지곤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는 글은 갈수록 정파적 편향성이 커지고 있다. 어떤 글은 분노와 증오의 표현 일색이어서 민망하다. 정치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당파적 이익을 앞세워 갈등과 분열을 부추긴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 내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게 된다. 정치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면서 공동의 대처 방안을 찾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공동체가 유지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정치인은 생각이 다른 이들과도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국회의원이라면 국민의 의견을 듣고 국정에 반영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의 정치인이나 국회가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러니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지도, 대화를 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정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 든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정치 본연의 역할에 대해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희망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래서는 나라가 밝은 미래를 열어나갈 수 없다.

마침 선거의 계절이다. 4·15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일제히 총선체제로 접어들었다. 정치인들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염치없게도 지역구 표심 얻기에 골몰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그대로 내버려 둬선 안 된다. 유권자들의 힘으로 정치를 바꿔야 한다. 정당들이 변화와 혁신을 내세우게 하고, 그 실현 가능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대를 걸 만한 감동도 주지 못하는 정치인을 솎아내야 할 것이다. ‘최악의 국회’라는 20대 국회의 오명을 21대 국회에서 되풀이하지 않게 해야 한다. 언젠가 정치가 제 기능을 하리라는 희망도 접어선 안 된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박완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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