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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사설] 전세대출 규제로 혼란에 빠진 세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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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9억원 넘는 주택 소유자에 대한 전세대출 규제가 어제부터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분양가상한제 적용지역 확대, 시가 15억원 이상 아파트에 대한 담보대출 전면 금지와 함께 최근 내놓은 18번째 부동산 대책 가운데 하나다. 이로써 전근이나 자녀교육 등의 문제로 거주지를 옮길 일이 생기더라도 요건을 맞추지 못한다면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됐다.

9억원 이상 주택을 한 채라도 갖고 있으면서 남의 집에서 전세를 살려는 경우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미 전세 대출을 받은 사람이라도 만기가 되어 동일한 전셋집에서 대출을 증액하는 것은 물론 전셋집을 옮기는 경우에도 제한을 받게 된 것은 마찬가지다. 신규 대출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무주택자라도 전세 대출을 받은 돈으로 9억원 넘는 집을 구입할 경우 대출금을 즉시 갚아야 한다.

이번 대출 규제의 의도는 명확하다. 전세를 살면서 다른 곳에 고가 주택을 사려는 사람들의 갭투자를 차단해 투기수요 확산을 막겠다는 것이다. 전세를 끼고 고가 주택을 구매하는 사람들을 실수요자가 아닌 투기세력으로 보려는 시각이 작용하고 있다. KB국민은행 주택통계에서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8억 9751만원에 달한 점을 감안하면 서울에 아파트를 가진 사람의 상당수가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

이같은 전세대출 규제는 집값 폭등의 부작용을 다른 규제를 동원해서라도 해결하겠다는 규제일변도 마인드를 보여주는 사례다. 새 아파트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전세 수요가 늘면서 전세금이 치솟는 현상을 놔둔 채 대출을 묶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이다. 당장 전셋집을 옮기는 데 제한을 받게 된 사람들이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하소연을 늘어놓을 만하다.

정부 정책은 여기서 그칠 기미가 아니다. 위헌 소지를 무릅쓰고 투기지역 등에서 임대료를 장기간 강제 동결하는 초강력 전·월세 대책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도 전해졌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을 이기려고 무리하게 정책을 폈던 과거 사례에서 끝내 어떤 결과가 초래됐는지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정부는 고집과 편견을 버리고 시장과 수요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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