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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법관부터 탄핵" 입당 일성은 강했다···'샤이 이탄희'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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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영입인재 10호 사법농단 알린 이탄희 전 판사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인재영입 발표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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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게 순진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이탄희(42) 변호사가 정계 입문 하루 만인 20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말이다. 그는 판사였던 2017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하 ‘사법농단’)을 세상에 알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사 단초를 제공한 그가 사직하자 주변에선 ‘여권 영입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이 변호사는 이를 부인했지만 결과적으로 법복을 벗은 지 1년 만에 여당 입당은 현실이 됐다.

이 변호사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더불어민주당 입당과 관련해 “작년 가을 한 차례 고사, 그리고 겨울이 돼서 또 한 번 고사를 했다”며 “올해 초 다시 한 번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진행자가 “(들어오는)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고 말하자 “원내에서 뭘 해야 하는지 4년 동안의 전략을 짜주는 사람도 (주변에) 있다”고 답하는 여유도 보였다.

민주당이 삼고초려를 거쳐 이 변호사를 영입한 배경에는 그가 지금껏 쌓은 ‘정의·순수 법관’ 이미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깔려있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이 변호사 입당에 날을 세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사법농단 폭로에 대해서만큼은 ‘공익 제보’라고 인정할 정도니 유권자에게 (이 변호사는) 경쟁력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날 스스로 “외유(外柔)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유순한 인상의 전직 법관은 대중에 호감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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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더불어민주당 '10호 영입 인재'인 이탄희 전 판사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인재영입 발표에서 소개를 고 있다. 2020.1.19/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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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정치를 택했을까. 이 변호사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법농단 1호 사건 무죄가 결정적인 정계 입문 계기였냐’는 질문에 “마지막은 그렇습니다”라고 조건부 긍정했다. “나는 내가 나를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하다”, “(사직 후) 내가 조금씩 작아진다고 느꼈다”고 고백하면서다. 무죄 판결 결과가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정치인이 된 주된 이유는 스스로의 결심에 따른 것이라는 말로 해석됐다.

그의 정치 의지는 사법농단 고발에 앞장선 판사의 여당행을 둘러싼 비판에 조목조목 해명하는 모습에서 드러났다. 이 변호사는 “법원 내 비판이 많다는 취지의 기사들은 사실관계가 좀 다르다”며 “판사들이 (내부망에) 쓴 글은 대부분 (나를) 지지하고 성과를 꼭 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공익 제보를 의원 자리와 엿 바꿔 먹었다”는 진 전 교수의 페이스북 글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그 분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전제한 뒤 “내 기존 행동들을 굉장히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 같다”고 뼈있는 답을 했다. 그러면서 “가치 있는 일을 한 사람이 그러면 가만히 있는 게 더 좋은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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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법원에 사직서를 내고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이탄희 변호사. [JTBC 캡처]



이 변호사는 판사 시절 법원 내 진보적 성향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기획팀장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5월까지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김형연 법제처장이 연구회 간사였던 때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초대 회장이다. 법관 진보인맥의 핵심축에 있던 이 변호사는 사법농단 사건이 불거진 후 “동료·후배들의 신망을 받는 판사들을 (법원행정처가 골라) 뒷조사를 하는 자리로 보냈다”고 폭로했다. ‘뒷조사 연구관’을 거부하고 실체를 공개한 본인을 포함한 말이다.

실제 그는 서울대 법대, 군법무관, 하버드대 로스쿨 석사 유학을 거친 법원 내 주류다. 본적은 전남 강진이지만 서울 출생으로 송파구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법조계에서는 ‘강남 좌파’라는 평이 나온다. 이 변호사는 이날 라디오에서 “국회의원이 되면 법관 탄핵부터 하겠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최대의 결과를 내야 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4·15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영입 인사’로 데려온 인물 중 입당식 이튿날 이렇게 강한 말을 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란 말이 나왔다.

이 변호사는 이날 아내 오지원(43) 변호사의 정치 독려도 밝혔다. “아내는 3년 전(사법농단 제보 때)에도 뒷조사 파일 USB를 들고 나오라고 했던 친구”라며 “‘기회가 왔을 때 하지 않으면 어렵다. 그리고 나면 스스로 용서할 수 있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일주일 전(12일) 민주당에 온 이용우 카카오뱅크 공동대표가 “정치 안 하는 게 결혼의 조건”이었다고 한 것과 정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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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KBS '거리의 만찬'에 함께 출연한 이탄희 변호사와 아내 오지원 변호사(오른쪽). [KBS 방송 캡처]



이 변호사는 “아직 아이들이 좀 어려 오히려 (아내보다) 내가 사실 (정계 입문을) 좀 염려했다”고 말했다. 남편과 사법연수원 동기(34기)인 오 변호사는 부산 출신으로 이 변호사와 함께 부부 판사였다가 2011년 남편보다 앞서 법원을 나왔다. 그는 남편이 입당한 19일 페이스북에 “국회·행정부·사법부의 주류 공직자들 중 약자들, 평범한 사람들 관점에서 적극 해석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꼭 필요한데 너무 드물다”고 썼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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