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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소설로 담은 쿠바에서의 기억과 경험…'역지사지' 가치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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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소설집 '베로니카의 눈물' 출간

한 편의 중편소설·다섯 편의 단편소설 묶어

"韓 성인지 감수성·남녀평등 의식 변화 놀라워"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아바나를 떠난 지 2년이 되었다. 나는 왠지 그 도시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도 쓰지 못했다. 그 도시의 얼굴은 야누스의 얼굴이었다. 천국과 지옥, 빛과 어둠, 순수와 오염, 자유와 고독, 혼돈과 모순. 그 시간을 통과해 낸 지금도 그곳을 생각하면,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기 때문이다.(‘베로니카의 눈물’ 중)

쿠바 아바나, 프랑스 파리, 미국 플로리다까지. 낯선 도시를 넘나들며 여성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중견작가 권지예가 10년 만에 소설집 ‘베로니카의 눈물’(은행나무)로 돌아왔다. 권 작가는 1997년 단편소설 ‘꿈꾸는 마리오네뜨’로 문예지 ‘라쁠륨’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뒤 이상문학상 대상, 동인문학상을 연달아 석권했다. 이번 책에서는 ‘이국’과 ‘낯선 장소’라는 장치를 적극 활용해 인물과 인물 사이에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와 관계의 뒤틀림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각 나라의 생활상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텍스트로 여행하는 묘미도 느낄 수 있다.

20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권 작가는 “여행을 하다 보면 세상 모든 게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남과의 비교가 아닌 역지사지, 공감의 능력이 생기게 되는데 바로 여행이 주는 미덕이자 문학의 존재 이유”라고 강조했다.

◇여행 체험이 소설의 배경

책은 한 편의 중편소설과 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묶었다. 표제작인 ‘베로니카의 눈물’은 글을 쓰기 위해 이역만리 한국에서 쿠바까지 날아온 모니카와 집의 관리인 베로니카가 유대감을 쌓아가는 이야기다. ‘쿠바 엄마와 딸’로 발전한 두 사람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지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남편이 유품으로 남긴 작은 상자의 비밀을 알기 위해 쿠바로 향하는 수현의 이야기(‘파라다이스의 빔을 만나는 시간’), 아내와 아이를 살해한 중산층 아빠의 이야기(‘내가 누구인지 묻지마’) 등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들과 수많은 삶의 이면을 여행이란 특수한 상황 속에서 곱씹어 보게 한다.

“2010년 겨울 프랑스 파리에 가서 몇 달 체류하고 오니 소설 청탁이 왔다. 기억이 따끈따끈할 때 쓰자 싶어 파리가 배경인 ‘낭만적 삶은 박물관에나’를 썼다. 그런데 이후에도 이상하게 어딘가 여행을 다녀오면 단편 청탁이 왔다. 하하. 어느 순간 여행의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하는 여행에세이 보다 소설가의 관점에서 새로운 여행 체험들을 소설적인 구성으로 쓰고 싶었다.”

199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8년간 유학생활을 했던 권 작가는 이후 틈나면 여러 곳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이런 경험은 자연스럽게 이국의 삶이나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권 작가는 “표제작인 ‘베로니카의 눈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쿠바의 기억과 경험을 쏟아부은 소설이라 애착이 간다”며 “열린 결말인데 베로니카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독자들이 각자 생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로 여성 화자가 나오고 여성의 서사가 중심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경우 ‘미투’를 다루기도 한다. 딸과 함께 플로리다에 여행 왔다가 딸이 사실은 성폭행 피해자고, 미투 고백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현주의 이야기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의 ‘성인지 감수성’도 변하고 남녀평등 의식도 괄목할 만큼 변해서 놀랐다. 10년간 쓴 소설을 퇴고할 땐 몇 군데 수정을 해야 했다. 우리 세대에서는 관례로 또는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로 견디고 참았던 것들이 많았다. 작품 중에는 억압받지 않을 여성의 자유를 녹여낸 게 꽤 있다.”

◇“관심갖는 소재에도 변화 생겨”

2009년에 네 번째 소설집 ‘퍼즐’을 출간한 이후 새 소설집을 내기까지 10년이 걸렸다. 2년간 일간지에 매일 장편 연재를 하고 나서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는 “개인적으로 글에 집중할 수 없기도 했고, 글 쓰는 일의 기쁨과 슬픔이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며 “소설집을 내고 다시 읽어보니 작가의 감수성도 좀 더 현실적으로 변한 것 같다”고 했다.

최근에는 관심을 갖는 소재에도 다소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권 작가는 “예전 내 소설의 주제와 달리 사회문제나 범죄 심리에도 관심이 많이 간다”며 “나이가 들어가니 웰빙과 웰다잉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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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 작가는 “여행이야말로 인생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기회”라며 “새로운 경험이나 만나는 인간관계를 통해 내 인생을 성찰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사진=ⓒ김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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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전경(사진=권지예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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