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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진흥법-촉진법 만들어 각종 기관 설립… ‘퇴직자 낙하산’ 통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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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2020 新목민심서-공직사회 뿌리부터 바꾸자]

<8> 규제 만들고 관련기관 재취업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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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처에서 국장급으로 퇴직한 A 씨는 2018년 초 소속 부처 산하에 있는 모 진흥원의 원장으로 취임했다. 이 진흥원은 정보기술(IT) 신산업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진흥법’에 따라 설립됐다. 당시 정부는 “진흥법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힘을 보태줄 기관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나 지금은 슬그머니 퇴직자 재취업 통로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공직 낙하산은 다른 업계에서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자동차업계의 한 민간협회 관계자는 “공무원들은 신산업을 육성하겠다며 일단 자리부터 늘리는데 그 뒤 나온 육성책에는 꼭 규제가 포함된다”며 “그 과정에서 관련 협회가 생기고 퇴직 공무원이 임원으로 간다”고 설명했다. 조직을 키운 뒤 규제 권한을 강화하고, 이 권한을 발판 삼아 퇴직 이후를 보장받는 구조다. 이는 공적 영역의 비대화와 규제 강화를 불러와 결국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 산업 진흥한다며 조직 불리기


각 부처가 인원을 늘릴 때는 늘 그럴듯한 명분을 댄다. 새로운 산업을 ‘진흥’ 또는 ‘지원’하고 ‘시대 변화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종 ‘진흥법’ ‘촉진법’을 만든다. 하지만 결국엔 관료 조직의 비대화와 규제 양산으로 이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율주행차나 드론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정부 규제가 좀처럼 걷히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15년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나온 ‘자율주행차 상용화 지원 방안’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그해 12월 국장급인 ‘자동차관리관’을 신설하고 그 아래 3개 부서를 뒀다. ‘첨단 자동차 개발 가속화’ 등 자동차 정책 환경 변화에 체계적으로 대응한다는 게 조직 확대의 근거였다. 자동차관리관은 출범 때는 2년 한시 조직이었지만 2018년 1월 정규 조직으로 전환됐다.

이후 자동차관리관 소속 각 부서가 담당하는 관련법과 시행령은 자율주행차의 핵심 규제 법령이 됐다. 자율주행차 업계 관계자는 “겉으로는 법령이 지원책 중심이지만 규제도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왔다. 그사이 국내에서는 자동차관리법, 도로교통법의 촘촘한 규제를 받게 됐다”고 했다. 지난해 3월 컨설팅 기업인 KPMG인터내셔널에 따르면 한국의 자율차 관련 제도와 정책은 25개 평가 대상국 중 16위였다.

규제를 없앤다며 이를 위해 조직을 늘리는 사례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2월 “지방 규제 혁신 업무, 조선·해운 분야 협력 과제 발굴 등에 필요하다”며 본부 인력 9명을 증원했다.

부처에서 규제 개혁 업무를 맡았던 전직 관료는 “각종 ‘진흥원’ 명패를 달고 있는 기관이 늘어나면서 정부 조직이 전반적으로 비대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산업 진흥 및 발전을 위한 법령은 600여 개다.

○ 규제 전문성이 재취업 무기


산하기관 등 관련 조직의 비대화는 공무원 사회의 인사 적체 해소를 위해 쓰일 때가 많다. 각 부처는 정년을 앞둔 고령 직원들에게 민간 기업이나 공직 유관 단체로 이직할 것을 수시로 권한다. 명예퇴직을 하는 대신 유관 기관에서의 일자리를 보장해 주기 때문에 사실상 ‘정년 연장’의 개념이다.

다양화, 복잡화된 규제가 퇴직 공무원들의 경쟁력을 높여주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사회부처 출신 고위 공무원들이 대형 로펌으로 옮겨가는 사례가 관가에서 자주 회자되고 있다. 환경부 실장급을 지낸 B 씨와 고용노동부 국장급으로 퇴직한 C 씨는 각각 대형 로펌의 고문으로 영입됐다. B 씨는 화학물질관리법 등 강화된 환경법규를 해석하고 관련 조언을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C 씨는 현 정부 들어 강화된 노동법규와 기업의 노무 관련 소송을 지원하는 업무를 한다.

로펌들이 예전엔 장차관 출신 관료들을 영입해 눈에 보이지 않는 로비를 했다면, 요즘엔 규제를 다뤄 본 경험과 전문성을 염두에 두고 영입 대상 관료를 선별하고 있다. 환경 노동 보건 등 사회 분야 규제가 부쩍 강화되면서 이런 규제를 다루고 해석하는 것 자체가 기업에 중요한 업무가 됐기 때문이다. 법령에 명시된 것뿐만 아니라 규제를 만든 사람의 의도까지 해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규제를 다뤄본 공무원 출신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고객(기업)이 요구하는 전문성이란 결국 규제를 잘 피해 가는 방법”이라고 했다.

중앙부처 차관을 지낸 한 인사는 “공무원 조직에서 모두가 승진을 할 수 없으니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외부 일자리를 가져와야 한다”며 “퇴직 공무원을 민간에 잘 내리꽂는 게 공무원 사회에서 장차관의 능력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고 했다.

김준일 jikim@donga.com·고도예·배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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