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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DBR]“귀요미 로봇도 너무 인간처럼 굴면 불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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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가하는 AI 서비스, 인간의 소외감-거부감 어떻게 줄일까

동아일보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앞으로 공존 그 자체보다 더 복잡하고 깊게 얽힐 것이다. 미국 텍사스오스틴 공항의 커피 로봇(오른쪽 위)과 인공지능(AI) 분야 컴퓨터 비전 학회 중 하나인 ICCV 2019에서 소개된 LG전자의 로봇 브랜드 클로이(CLOi) 로봇(오른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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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의 평범한 목수다. 그러던 어느 날, 다니엘은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면서 의사의 권고로 일을 그만두게 된다. 생계가 막막해진 다니엘은 정부에 질병 수당을 신청하기 위해 심사관과 통화를 한다. 그런데 심사관은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지, 모자를 쓸 수 있는지 등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다니엘을 질병 수당 대상자에서 탈락시킨다. 매뉴얼상 질병 수당을 받을 만큼 아프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질병 수당을 받을 수 없게 된 다니엘은 할 수 없이 구직 수당을 신청하려 한다. 그러나 구직 수당은 구직 활동을 한 사람만 받을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몸이 아프다고 일을 그만하라고 하더니 일을 그만두니 구직 활동을 하라는 아이러니한 상황. 여기저기 호소를 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매뉴얼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뿐이다. 영화에서 다니엘은 실업급여 명단에만 올려진 채, 질병 재심사 항고는 해보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증세가 악화돼 숨을 거둔다.

이 영화는 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선진 복지 국가로 유명한 영국 복지제도의 현실과 매뉴얼 중심의 효율적 시스템이 때로는 인간에게 불쾌감과 소외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굳이 영화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최근 로봇이나 키오스크, 챗봇 등의 대중화가 때로는 영화 속 다니엘 블레이크가 겪는 소외감을 일상생활에서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실제 일상생활에서 로봇을 마주하는 일은 더 이상 생소한 일이 아니다. 소소한 추천 서비스부터 자율주행 로봇에 이르기까지, 로봇의 영역은 날이 갈수록 확장되고 있다. 서비스 현장에 로봇이 늘어나는 이유는 편의성과 효율성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 로봇과의 상호작용에서 인간이 느끼는 소외감이나 불쾌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현업에서 로봇을 활용하면서 소비자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줄일 수 있을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월 1일자(288호)에 실린 ‘인간 삶과 AI의 접목’ 관련 기사를 요약 정리했다.

○ 인간과 비슷하지만 너무 닮지 않은 디자인

우리에게 익숙한 로봇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로봇처럼 인간의 움직임을 본떠 온갖 장애물을 뛰어넘는 로봇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로봇은 귀여운 모습이다. 이는 로봇이 인간을 너무 닮거나 너무 인간처럼 굴 때 느끼는 이상야릇한 불쾌감을 피하기 위해서다. 전문용어로는 이러한 현상을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불쾌한 골짜기)’라고 한다. 그래서 로봇 기술이 계속 발전해도 인간 대면 서비스 로봇의 모습들은 하나같이 귀엽다.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으로 세상에 없는 사람 얼굴 이미지도 뚝딱 만들어내는 시대지만 로보틱스에서는 함부로 그 선을 넘지 않고 있다. 일례로, 대면 서비스 로봇의 대표 주자인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Pepper) 디자이너 리드 맷 윌리스는 한 인터뷰에서 “로봇이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게 하기 위해서는 너무 심하게 인간처럼 만들어서는 안 된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 인간과 로봇의 감정 교류


2017년 6월 일본의 한 사찰에서는 소니의 애완 로봇 ‘아이보(Aibo)’의 합동 장례식이 열렸다. 사람들이 자신이 기르던 애완 로봇의 장례식을 치러준 것. 이상한 광경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인간이 로봇에게 어느 정도 수준까지 감정을 느끼고 부여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적어도 이 사례를 보면, 로봇 애완동물을 그저 물건에 대한 집착이나 아쉬움쯤으로 치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생전 로봇 강아지로부터 받는 위로는 그저 인간 사용자의 상상이 빚어낸 산물일까. 사실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을 관찰해 보면 사람이 로봇을 생명체처럼 대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음성 비서나 인공지능 스피커에 말을 할 때 유독 더 또박또박 큰 소리로 하는 모습이 그 예다. 인간 스스로 로봇이 잘 알아듣도록 소통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 소비자에게는 로봇과 함께 인간도 필요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공존 그 자체보다 더 복잡하고 깊게 얽힐 것이다. 결국 인간도 로봇도 서로 길들이는 사이가 되고 나면 둘 사이는 그저 ‘쿨하게 서로 업무만 보는 관계’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인간 사용자는 기존의 인간 상담자로부터 느꼈던 인정 같은 것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챗봇이 아무리 달짝지근하게 말을 건네도 단어나 문장이나 말투에서는 소화할 수 없는, 인간끼리 느끼는 ‘기분’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매번 맥도널드의 드라이브스루만 이용하다 어느 날 우연히 기계 고장 때문에 사람인 점원에게 주문할 때 느끼는 그 따뜻함, 그것을 기계에 학습시키려고 보면 막상 그 원천을 콕 집어내 훈련하기가 어렵다.

전면 자동화를 꿈꾸는 비즈니스 업계일수록 이 부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고객서비스에 AI를 활용했을 때 좋은 점은 수십 가지다. 고객에게 더 합리적인 서비스를 할 수 있고, 그들 또한 더 편리해 할 것이라고들 한다. 기계화 이후 순이익이 상승했다는 지표들도 심심찮게 나온다. 조직 입장에서는 인건비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 모든 접점이 기계로 대체된 세상이 주는 효용은 실상 ‘편의성’말고는 거의 언급되는 것이 없다. 콜센터 업무 같은 감정 노동이 로봇으로 죄다 대체되고 나면 고객의 감정은 온전히 고객 자신이 관리해야 할 것이다. 기계는 사람이 따듯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그 사람을 똘똘하게 보조하는 역할을 맡으면 되지 않을까. 매뉴얼에는 표기되지 않은 ‘감동’을 AI가 도와줄 수 있다.

유재연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연구원 you.jae@snu.ac.kr

정리=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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