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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언제나 날 돌봐줄 것 같던 부모님의 보호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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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아버지·루게릭 어머니 간병 경험 담은 에세이 봇물

“뭐라도 해보려던 스무 살에 아버지가 쓰러졌다. 2011년 일이다. 그 뒤 1인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 그러는 동안 나는 병원에서 ‘보호자’로 불렸다. 주위에서는 심심찮게 ‘효자’로 부르기도 했다. 어느새 2인분의 삶을 담당하는 ‘가장’이 됐다. 돈, 일, 질병, 돌봄이 자주 나를 압도하거나 초과했다.”

조기현(28)씨가 지난해 낸 '아빠의 아빠가 됐다'(이매진)는 아버지와 둘이 살던 고졸 아들이, 이른 치매가 온 50대 아버지를 9년간 간병한 기록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돌봄 노동'의 고단함을 증언하며, '사회적 돌봄'과 국가의 책무를 강조한다. 무겁고 우울한 내용임에도 출간 한 달여 만에 초판 2000부를 소화했다. 정철수 이매진 출판사 대표는 "20대 남성이 쓴 책인데 의외로 40~50대 여성이 많이 사 봤다. '나는 어떻게 될까?' '우리 부모님은?' 하며 독자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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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수명 82.7세(2018년 기준)인 고령화 시대, 병든 부모를 돌본 경험을 적은 '간병 에세이'가 쏟아지고 있다. 요양보호사 최현숙(63)씨가 쓴 '작별일기'(후마니타스)의 부제는 '삶의 끝에 선 엄마를 기록하다'. 여든여섯 치매를 앓는 노모 곁에서 써 내려간 1000일간의 기록을 통해 아픈 노인과 그의 가족, 실버산업의 현실과 간병 노동자의 처우 문제, 인간의 존엄까지를 다룬다. 30~50대 여성이 고루 사본 책으로 1800부가량 팔렸다. 이진실 후마니타스 편집자는 "페미니스트의 시선으로 가족주의와 효(孝) 사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자신이 돌본 가난한 노인과 실버타운의 부유한 노인의 현실을 비교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책의 차별점"이라고 했다.

조손 가정에서 자란 손녀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할아버지·할머니의 보호자가 된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린 김달님(32)의 '작별인사는 아직이에요'(어떤 책)도 30대 여성들의 마음을 울리며 중쇄를 찍었다. 김정옥 어떤책 대표는 "'보호자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닥칠 보편적인 이야기라 독자들의 시선을 끌었다"면서 "요양병원 생활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것이 도움이 됐다는 반응도 있다"고 했다.

이 밖에 치매 어머니를 간병하는 딸이 어머니의 달라지는 행동과 감정을 뇌과학적으로 분석한 '엄마의 뇌에 말을 걸다'(카시오페아), 루게릭병 엄마를 돌보는 아들이 쓴 '나대지 마라 슬픔아'(사과나무), 치매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그린 '7년간의 마법 같은 기적'(밀알속기북스) 등이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전문가가 쓴 노인 질병 관련 책보다 평범한 이들이 쓴 간병 에세이가 더 인기를 끄는 건 왜일까.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아픈 부모를 보살핀다는 건 평생 ‘나를 돌보는 존재’일 것만 같았던 부모에 대한 이상화가 바닥까지 허물어지는 경험이다. 그 심리적 박탈감을 치유하는 데 남들의 경험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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