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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양승태 대법서 일했다고… '적폐 따까리' 막말, '밥組' 따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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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검찰 조사받은 판사만 100여명 달해

사표 낸 판사들 "지금 법원은 노력보다 성향 중시, 미래가 없다"

조선일보

한승 전주지법원장(왼쪽), 김기정 서울서부지법원장


"동료 판사들에게 '적폐'로 몰리는 게 제일 힘들었다."

최근 사표를 낸 A 부장판사는 최근 지인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법원에 더는 미련이 없다.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A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일했다. 그런데 2017년 9월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양승태 대법원'의 권한 남용 의혹에 대한 법원 자체 조사, 검찰 수사가 연달아 진행되면서 그는 '적폐 판사'로 분류됐다.

실제 2018년 초 일부 판사는 판사 전용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서 '양승태 대법원'에서 근무했던 동료 판사들을 향해 '양승태 적폐 종자 따까리'라는 막말을 쏟아냈다. A 부장판사는 당시 동료 법관들의 시선이 두려워 법원 엘리베이터 대신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계단을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이달 말 법원 정기 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낸 법원행정처 및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판사 18명 중 가장 많은 9명은 A 부장판사처럼 '양승태 행정처'에서 일했던 부장판사들이었다.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이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또 다른 부장판사는 작년 초 한 지방법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외부인과 식사 자리가 적은 판사들은 자기들끼리 고정적으로 함께 밥을 먹는 '밥 조(組)'를 만들기도 한다. 이 부장판사는 당시 한 '밥 조'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가 동료 판사들로부터 거부당하는 일도 겪었다고 한다.

이번에 함께 사표를 낸 B 판사는 주변에 "지금 법원에선 노력, 쌓아온 평판보다 성향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법원행정처와 서울중앙지법 주요 보직은 김 대법원장이 회장을 지낸 인권법연구회와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 취임 후 있었던 대법관 후보 추천에서도 행정처 출신 판사들이 탈락하는 일이 반복됐다. 한 부장판사는 "이번에 사표를 낸 일부 부장판사가 공통으로 한 얘기는 '지금 법원에선 미래가 없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2018년부터 작년 초까지 9개월간 이어진 검찰의 '양승태 대법원' 수사를 받으면서 마음을 접은 판사들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100명 안팎의 행정처, 대법원 연구관 출신 판사들이 조사를 받았다. 사표를 낸 C 판사도 지인들에게 "동료·후배 판사들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걸 보는 것도, 대법원이 나를 징계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도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작년에 사표를 냈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나간다'고 할까 봐 지금까지 참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판사들의 개인 사정이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한 가지 원인으로 이번 '줄사표' 사태를 설명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김 대법원장 취임 후 이뤄진 일련의 '사법 적폐' 청산 작업이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현 전 대한변협 회장은 "과도한 '사법 적폐' 청산 바람에 법원의 인재들이 떠나고 있다"며 "국민의 '질 좋은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는 것"이라고 했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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