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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평화·화합의 날… 美 2만여명 "총기 규제말라" 무장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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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장악한 버지나아주의 강력한 총기 규제 추진에 반발

트럼프는 시위 독려하는 메시지

야권 "시위선동 트럼프는 괴물"

20일(현지 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주도 리치먼드 의사당 주변에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상당수가 백인 남성인 이들은 군복 차림에 크고 작은 총기로 무장했고, 방탄조끼와 헬멧을 착용했다. 시위대는 '총이 생명을 구한다(Guns save lives)' '(총기를 규제하는) 법을 따르지 않겠다'와 같은 플래카드를 들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경찰은 의사당 앞 광장에서 무기 소유를 금지했지만, 전국에서 모여든 2만2000명 시위대 중 6000명 정도는 경찰 통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장으로 진입했다.

텍사스주에서 왔다는 테리 혼은 스미스앤드웨슨의 소총과 40구경 권총을 가지고 단상에 올라 "여기서 추진되는 일들이 중단되지 않으면 다른 주까지 번져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CNBC는 전했다.

대규모 무장 시위가 더 이례적인 것은 이날이 미 연방 공휴일 '마틴 루서 킹 데이(MLK day)'였기 때문이다. 흑인 지위 향상에 힘쓰다가 백인 우월주의자의 총격에 암살된 킹 목사를 기리기 위해 그의 생일을 공휴일로 삼은 날이다. 미 연방 정부는 마틴 루서 킹 데이에 대해 "킹 목사처럼 사회를 개선할 수 있는 분야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봉사하는 날로 삼기 위해 지정된 국경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간 킹 목사의 업적과 뜻에 대해서는 인종 간, 좌우 간에 이견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마틴 루서 킹 데이에는 평등과 화합을 촉구하는 행사가 열려 왔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워싱턴 DC의 킹 목사 기념비를 찾아 묵념했다. 하지만 그가 머문 시간은 2분에 불과했다고 백악관 기자단은 전했다. 대신 백악관은 킹 목사를 정쟁에 동원했다.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이날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지 못할 절차(탄핵)에 미국인들을 끌고 가는 것은 킹 목사의 비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리치먼드 무장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시위 전 트위터를 통해 "버지니아에서 수정헌법 2조가 심각한 공격을 받고 있다. 민주당을 뽑으면 이런 일이 생긴다. 그들은 당신의 총을 빼앗아간다"며 "2020년 버지니아에선 공화당이 승리하겠다. 민주당원들, 고맙다!"고 시위를 독려했다. 시위를 철저히 정략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시위 당일에도 재차 "버지니아에서 민주당이 여러분의 수정헌법 2조 권리를 박탈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2020년에 공화당에 투표하라!"라고 썼다. 미국의 수정헌법 2조는 무기 소지와 휴대에 근거가 된 조항이다.

시위가 일어난 버지니아주는 미국 내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거대 이익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의 본부가 있는 곳으로, 전통적으로 '공화당 텃밭'으로 불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민주당의 장악력이 커지면서 민주 공화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로 변했다. 최근엔 오히려 민주당이 좀 더 강세를 보인다. 지난 대선 때엔 트럼프 대통령에게 패배를 안겼으며, 작년 11월 지방선거로 민주당이 주의회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랠프 노덤 주지사 등 민주당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총기 구매 이력자 확인과 위험인물에 한해 총기 소지를 막는 '적기법(red-flag law)'을 추진하자 이에 반발한 '버지니아 시민방위대' 등 총기 옹호론자들이 이날 대규모 시위를 기획한 것이다. 텍사스·오클라호마·플로리다 등 외부에서 온 시위자 수가 상당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시위 현장에는 '2020 트럼프' 등 트럼프 지지 플래카드와 트럼프의 슬로건인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가 다수 등장했고, '민주당 노덤 주지사를 몰아내라' 등 민주당을 비난하는 플래카드도 많았다.

트럼프 3년 집권 동안 미국 사회 저변에 깔려 있던 사회적 갈등이 이번 시위처럼 시도 때도 없이 폭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위터에 "어떻게 감히 마틴 루서 킹 데이에 무례한 시위를 벌일 수 있느냐" "무장 집회를 선동한 트럼프는 괴물" 등의 글을 올렸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시위가 킹 목사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 우리에겐 시위할 권리가 있다"고 맞섰다.

☞마틴 루서 킹 데이(MLK Day)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이자 평화주의자였던 마틴 루서 킹 목사(1929~1968)를 기리는 미 연방 공휴일. 1986년 그의 탄생일(1월15일) 즈음인 1월 셋째 월요일로 정해졌다. 평생을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 평등 운동에 바친 킹 목사는 1965년 흑인 참정권을 보장하는 투표권법 제정을 이뤄냈다. 그는 1963년 8월 28일 25만 군중 앞에서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명연설을 했고,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1968년 39세 나이에 백인우월주의자에게 암살됐다.





[이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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