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대거 풀린 미 달러화가 코스피 상승 주도
최근 미국 뉴욕 증시가 잇따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주식시장 호황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주요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불마켓(bull market·상승장)을 이끄는 원동력은 미국 달러화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작년 10월 "시장의 단기 유동성(자금 공급)을 안정시키기 위해 보유 자산 매입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연준이 미 국채 등을 매입하는 식으로 달러를 풀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6월까지 4800억~6400억달러(약 560조~750조원)가 시장에 흘러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연준이 2010~2011년 추진한 '양적완화(QE)' 2단계 때 푼 자금(5620억달러)에 준하는 것이다. 막대한 규모로 풀린 달러 덕분에 돈의 힘으로 주가가 상승하는 유동성 장세가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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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 협상 1단계 합의를 전후로 중국 위안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 가치가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도 올해 코스피 상승세 요인 중 하나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선행지수가 최근 3개월 연속 상승했고, 미·중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오름세를 보이는 등 제조업 경기가 단기적으로 반등하는 것도 신흥국 증시에 우호적"이라고 말했다.
◇"PBR 1배도 안 되는 저평가 종목 여전히 많아"
하지만 주식시장에 들어온 자금이 특정 종목으로만 쏠리는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수혜주는 주로 IT와 중국 소비주다. 올해 반도체 경기 개선 기대감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올 들어 각각 10.0%, 5.5%나 올랐다. 위안화 강세와 미·중 무역 협상 1단계 합의, 시진핑 중국 주석 방한(訪韓) 가능성 등으로 호텔신라,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의 중국 소비주도 올 들어 7~10%가량 상승했다.
반면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배도 안 될 만큼 상승장 속에 소외된 종목도 많다. PBR이란 시가총액을 장부상 순자산가치(청산가치)로 나눈 값으로, PBR이 1배 미만이라는 것은 기업이 망해서 보유한 자산을 모두 팔아 치웠을 때 받을 수 있는 값어치보다 주식이 낮은 가격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3곳 이상이 실적을 전망한 기업 289곳 가운데 PBR이 1배 미만인 곳은 총 127곳으로 43.9%나 됐다. 저평가주 명단에는 은행·철강·건설주가 다수 포함돼 있다. 시가총액이 12위와 13위에 올라 있는 KB금융과 신한지주의 PBR은 각각 0.48배이고, HDC현대산업개발은 0.39배, 현대제철은 0.24배에 불과하다. LG생활건강(4.92배), 호텔신라(3.36배), 삼성전자(1.53배) 등과 차이가 크다. 은행주는 저금리와 부동산 대출 관련 규제로, 철강은 공급과잉 문제에 따른 시장가격 둔화로, 건설주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당분간 반등할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많다.
삼성증권 정명지 수석연구위원은 "철강, 건설주 등은 경기 민감주인 만큼 관련 주가가 지지부진하다는 것은 현재 상승 국면이 경기 호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미국과 대만의 거대 IT 업체들과 비교해 주식 가격이 쌌는데 최근 그 격차가 줄어드는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섭 기자(oasi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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