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대한민국 헌정회 국가과학기술 헌정자문회의 의장·前 과학기술부 장관 |
역사의 정방향을 외면하면 불행하고, 끌어안으면 행복하게 된다고 한다. 지구촌이 급속히 노령화 사회로 변화하는 것은 거대한 역사 변화의 정방향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7년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2%를 차지해 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2026년에는 노인이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가 된다. 이어 2036년에는 고령 인구 비율이 30%를, 2051년에는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령화 속도는 물론 노인들의 빈곤화 속도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치매 등 각종 질병과 빈곤, 직업 등 노인과 관련된 수많은 현안은 갈수록 핵폭탄급 충격과 사회문제를 낳을 것이다. 문제는 이미 눈앞에 다가와 있는 노인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민하고 장기적인 국가 전략을 마련하는 일에 우린 너무 방심하고, 완전히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요양병원·요양원의 현실을 보자. 많은 노인이 이 시설에 가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요양병원·요양원을 '화장터 대기장'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시설과 운영, 의료 수준 등이 저급하다 못해 허접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김포 요양병원과 밀양 세종병원 등의 화재에서는 노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현행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시설과 서비스 문제는 진정한 노인 복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우리의 현주소가 보인다. 이웃 일본의 경우, 요양원은 노인들이 집처럼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요양원 내 카페에서 친구와 커피를 마시고, 식사 준비는 직원들과 함께 하기도 한다. 주말엔 찾아온 자식들과 담소로 시간을 보내도록 한다.
네덜란드에서 운영하고 있는 치매마을 요양원은 흥미롭다. 동급 환자들끼리 자율 학습 토론 동아리를 만들고, 환자로 위장한 의사들도 참여해 토론식 학습을 흥미롭게 유도하고 있다. 일부 학자는 이런 형태의 요양원을 자가면역력개발원 또는 면역력증진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태인의 하브루타 교육의 핵심이 자율 동아리 학습으로 학생들 스스로 창의력을 개발하도록 하는 것처럼, 치매 환자들끼리 자율적 동아리 학습을 통해 환자 스스로 치매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 결국 치매 증상들을 개선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면역력개발원 설립과 보급이 시급하지만, 현행 복지재단 설립 절차와 행정 관행으로서는 재단 설립 인허가 자체가 무척 어렵다. 아예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답답한 현실 문제를 풀기 위해선 노인과 관련된 정책과 비전을 하나로 통합해 다루는 '노령지건부(老齡知健部)' 같은 중앙 부처가 시급하다. 담당 장관은 연금제도, 건강보험제도, 노인돌봄제도, 요양기관제도, 세금 문제, 사회체육 활성화, 노인 지혜 활용 촉진 등 노령 사회에 대비한 정책을 입안·집행·평가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미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핀란드, 호주 등 노인 복지 선진국들은 국가 부처로 노인청을 만들어 노인들의 건강과 기초생활보장 등의 문제는 물론 노인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국가 경쟁력 강화에 활용하는 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노인들이 오래 건강하게 살도록 하고, 사회에서 핵심 세력으로 일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많은 가정이 고통과 슬픔이 아닌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곳이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상희 대한민국 헌정회 국가과학기술 헌정자문회의 의장·前 과학기술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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