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서 '2032년 서울·평양 공동 유치案' 의결
'국가 정책 확정된 행사는 타당성 조사 면제' 규정 꺼내들어 강행
文 임기 후에나 유치전 본격화되는데, 국민적 합의 없이 속도전
정부는 21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2032 하계올림픽 서울·평양 공동 유치 및 개최 추진 계획(안)'을 심의·의결했다. "과속하지 말라"는 미국의 경고에도 전날 북한 개별 관광 추진에 이어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 유치·개최 계획도 정부 차원에서 공식화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총사업비 50억원 이상 국제 행사 개최 시 거쳐야 하는 타당성 조사도 "'국가 정책적으로 사업 추진이 확정된 사안은 면제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에 해당한다"며 생략한 것으로 확인돼 졸속 추진 논란이 예상된다. 북한을 향한 일방적 구애 속에 유치 및 개최 과정에서 수조원 이상이 소요될 공동 올림픽 카드를 국민적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꺼내 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 임기 후 진행될 사안에 대한 '정치적 알박기'라는 말도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 유치·개최를 추진하기 위한 정부 계획을 보고했다. 문체부는 계획안에서 "2032 올림픽 남북 공동 유치·개최는 남북 정상이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합의하고 IOC에 남북 공동으로 유치 의향을 표명한 사항"이라며 "스포츠를 통한 동북아와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하기 위한 핵심 국정과제"라고 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올림픽 개최 취지와 기본 방향, 개괄적인 소요 예산 등을 담은 1차 로드맵"이라며 "올 상반기 중 통일부 등과 우리 측 합동 실무추진단을 꾸릴 것"이라고 했다.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올림픽 공동 유치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만든 만큼 추진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결국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처럼 올림픽을 남북 교류 통로로 이용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정부는 이번 의결에 앞서 공동 유치·개최 추진안의 타당성 조사도 생략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훈령인 '국제 행사 유치·개최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국제 행사 총사업비가 50억원 이상인 경우, 행사 주관 기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한다. 다만 '국무회의 등 대통령 주관 회의에서 국가 정책적으로 사업 추진이 확정된 행사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정부가 이 규정을 이용해 타당성 조사를 생략하기 위해 국무회의 의결을 서둘렀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북 관계에 속도를 내려고 재정 건전성은 뒷전으로 밀어낸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도 국무회의 의결로 타당성 조사가 면제됐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단독으로 추진하는 국제회의와, 북측이 의지도 보이지 않고 개최에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될 남북 공동 올림픽 개최는 다르다는 지적이 많다.
올림픽 공동 유치·개최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미국은 최근에도 연일 "남북 협력은 반드시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춰 진행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올림픽 유치 또는 개최 시 투입해야 할 수조원대 예산은 대부분 우리 정부가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유치 비용과 시설 설치 비용 등을 일부라도 부담할 경우엔 재정적 부담과 함께 유엔 제재 위반 소지도 크다. 우리 정부가 '마이웨이'를 고집하다 한·미 동맹의 파열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올림픽 유치를 위한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을 포함하면 우리 정부의 부담 비용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된다. 설사 유치에 성공하더라도 개막 직전까지 공동 개최를 장담할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소요 예산을 가늠할 수 없고, 최근 올림픽 등을 기준으로 한 추산치만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시설 운영 등에 들어간 예산은 약 2조8000억원에 달하고, 브라질 리우 올림픽의 경우 개최 비용이 약 5조원으로 추산된다.
우리 정부에 따르면 2032년 올림픽 유치전은 문 대통령이 물러나는 2022년 이후에나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벌써 4년 차에 접어든 문 대통령 임기 중에는 가시적인 추진 성과를 얻어내기 힘든 셈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신년사에 이어 14일 신년회견에서도 "2032년 남북 공동 올림픽 개최는 이미 합의한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될 사업을 예산 검토는 물론 국민적 합의도 없이 '속도전'으로 추진할 경우 다음 정부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 국민적 갈등 소지가 될 수도 있다.
[안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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