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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태석 신부님 10주기 선물” 한국서 의사 된 남수단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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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인제대 의과대 합격 후 8년만에 의사 돼

루벤 “신부님 지원 덕분에 막연했던 의사 꿈 이뤄”

3월부터 부산백병원서 인턴으로 근무

레지던트 마친 후 고향 돌아가 의료기술 전파

중앙일보

故 이태석 신부의 남수단 제자인 존 마옌 루벤(33)이 제84회 의사국가시험에 21일 최종 합격했다. [사진 인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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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출신의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막연히 의사가 되고 싶다 생각했는데 이태석 신부님을 만나 꿈을 이뤘습니다.”

‘수단의 슈바이처’ 고(故) 이태석 신부(1962~2010)의 남수단 제자인 존 마옌 루벤(33)이 밝힌 소회다. 루벤은 지난 8일 2020년도 제84회 의사국가시험에 응시했고 21일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루벤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신부님의 도움으로 인제대 의과대학에 입학한 지 8년 만에 의사가 됐다”며 “신부님 선종 10주기를 맞아 의사가 되니 신부님께 받은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부님이 살아계셨다면 많이 자랑스러워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루벤은 지난해 의사가 된 같은 수단 출신의 토마스 타반아콧(33)과 함께 2012년 한국에 들어왔다. 이태석 신부가 만든 수단 어린이장학회 지원 덕분이었다. 그해 연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마친 뒤 인제대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이때부터 하루 3~4시간 쪽잠을 자며 한국어 공부와 의과 공부를 병행했다고 한다. 루벤은“어학당에서 배운 한국어는 간단한 단어 위주였다”며 “생소한 의과 전문용어를 새롭게 익혀야 했고, 수업 내용을 따라가지 못해 수업이 마친 뒤 교수님 방에 가서 따로 공부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루벤의 사정을 잘 아는 교수들은 루벤의 부탁을 거절하기는커녕 먼저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고 한다. 그는 “강의가 마칠 때쯤 되면 교수님이 먼저 ‘루벤은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라’고 말할 정도였다”며 “한국인 의대 동기들도 적극적으로 도와준 덕분에 의과시험에 최종 합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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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의사시험에 최종 합격한 이태석 신부의 남수단 제자인 토마스 타반 아콧.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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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과 같이 입학했던 토마스 타반아콧은 지난해 의사시험에 합격했다. 그해 루벤은 실기시험에는 합격했지만, 필기시험에 떨어져 1년간 재수를 했다. 루벤은“생각했던 것보다 필기시험 어려워 떨어졌다”며 “올해 필기시험을 치기 하루 전날 스트레스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루벤은 오는 3월부터 부산백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한다. 지난해 합격한 아콧이 근무하는 곳이기도 하다. 루벤은 레지던트 과정을 모두 마치면 고향인 남수단으로 돌아가 의료기술 전파에 나설 예정이다. 그는 “남수단은 오랫동안 내전을 겪어서 환자가 많은데 의사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낙후된 의료기술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 전공을 정하지 않았는데 남수단에 가장 필요한 의료기술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루벤이 남수단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데에는 이태석 신부의 영향이 가장 크다. 루벤은 “신부님이 남수단에서 보여준 모든 행동이 감동이었다”며 “신부님처럼 봉사하는 삶을 살며 훌륭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루벤의 목표는 의과대학을 세워 후배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다. “남수단은 의료 기술이 낙후됐을 뿐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 과정이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먼저 의사가 된 아콧과 의과대학을 세워서 교수로 활동하며 후배를 양성하는데 제 남은 일생을 바치고 싶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됐다. 1988년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에서 인턴을 수료한 후 살레시오회에 입회해 사제의 길에 들어섰다. 2001년 아프리카 남수단의 오지 톤즈로 건너간 이태석 신부는 가난한 이웃의 친구이자 의사로 봉사활동을 펼쳤다. 2008년 한국에서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2년간 투병생활을 하다 2010년 1월 48세 나이로 선종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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