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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단독] 군 부대 떠난 인왕산 바위에 산신령 조각 2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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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수성동 계곡 위쪽의 바위에 새겨져 있어

하나는 산신과 동자, 호랑이, 다른 것은 부부 산신

1900년대 전후 망국에 불안하던 민중 신앙 자취

전문가 “수준·상태 좋아 문화재 지정 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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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방위사령부의 한 부대가 머물렀던 인왕산 자락 바위에서 1900년대 전후의 산신 암각(바위새김) 2점이 동네 주민들에 의해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신령한 산으로 알려진 인왕산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조각이라며, 이미 알려진 주변의 다른 산신 암각 2점과 함께 문화재 지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서촌 지역의 주민 모임인 서촌주거공간연구회(서주연)는 과거 수방사의 제1경비단 백호대대의 소초(작은 부대)가 있던 수성동 계곡 바로 위 서울 종로구 옥인동 산 3-37번지의 바위벽에서 산신 암각(바위새김) 2점을 발견해 서울시와 종로구에 신고했다. 이 산신 암각이 발견된 지역은 1968년 1.21사건 이후 인왕산에 청와대 경비 부대가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접근이 불가능해졌다가 지난해 부대가 떠나면서 시민들에게 다시 개방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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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은 산신과 동자, 호랑이가 볼록새김(양각)된 전형적인 산신도로 가로 180㎝, 세로 140㎝ 크기다. 다른 한 점은 부부 산신과 호랑이가 선새김(선각)된 산신도로 가로 130㎝, 세로 180㎝다. 서주연의 장민수 회장은 “새해 초 회원들과 인왕산을 답사하다가 나무와 담쟁이로 덮여있던 두 산신 암각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에 산신 암각이 발견된 인왕산 기슭엔 이미 2점의 산신 암각이 존재하고 있어, 수성동 일대의 산신 암각은 모두 4점이 됐다. 이 일대가 과거 도성 안에서 무속이나 산신 신앙의 주요 공간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존의 산신 암각 2점은 수성동에서 좀 더 올라가 인왕천 샘에서 인왕산 석굴암으로 가는 길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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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발견된 산신 암각에 대해 산신도 전문가인 윤열수 가회민화박물관장은 “2점의 산신 암각이 오랫동안 군 부대 안에 있었기 때문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산신 암각이 많지 않은데, 2점 모두 조각 수준이나 보존 상태가 좋아보인다. 주변에 있는 기존의 2점과 함께 서울시 문화재 자료로 지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 관장은 “2점의 암각 시기는 19세기 말~20세기 초로 추정되며, 통상 동자·호랑이와 함께 있는 산신보다 부부 산신이 좀 더 후대에 나타난다. 무속인이 주문해서 전문 석수(돌 장인)가 새겼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인왕산에 이런 산신이 새겨진 이유에 대해 윤 관장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 사이에 조선이 쇠퇴하다가 망국에 이르렀기 때문에 민중들이 정신적으로 의지할 데가 필요했다. 이때 전통적인 산신 신앙이 확산됐고, 그림과 암각도 많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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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도 “인왕산은 조선 때 도성 안의 신령한 산으로 전통 종교의 중심지이자 기도처였기 때문에 산신이 많이 새겨진 것 같다. 1968년 1.21사태 이후 군 부대가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출입이 오랫동안 금지돼온 인왕산 일대 역사 유적에 대한 전체적인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의 허대영 문화재연구팀장은 “문화재위원 등 전문가들과 현장을 답사한 뒤에 문화재로 지정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산신은 삼국 시대부터 민중 신앙의 대상이었으나, 산신도는 19세기 초부터 본격 등장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크게 발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산신 암각이 발견된 지역은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수방사 시설을 철거하고 시민을 위한 공원을 만든 곳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뒤 인왕산의 많은 군 시설을 철거해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글·사진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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