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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민주당 영입 원종건 “효자소년? 삶에서 겪은 청년문제 꺼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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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청년 정치’ 구역

“기성정치인의 반대는 다양성

각계 청년들 국회로 들어와야

쓴소리가 아닌 의제 제시할 것”






*편집자주: 원종건씨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총선 영입인재 자격을 스스로 당에 반납하겠다”며 총선 불출마 뜻을 밝혔습니다. 옛 여자친구가 인터넷 사이트에 ‘원씨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원씨는 “한때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저와 관련한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다. 논란이 된 것만으로도 당에 누를 끼쳤다”면서 “올라온 글은 사실이 아니다.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가 홀로 진실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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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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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거의 없는 여의도 정치권에 ‘청년 정치’라는 말이 유행처럼 쏟아지던 시기,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만 27살의 청년 원종건씨를 총선 인재로 영입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역대 최연소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던 나이보다 한살 많다. <한겨레>는 양말과 신발끈을 오렌지로 ‘깔맞춤’하고 국회 로텐더홀을 깡충깡충 뛰어다니던 원씨를 지난 20일 만났다. 그는 과연 정치할 준비가 돼 있을까. 현실 정치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그가 기성 정치권의 ‘알리바이’ 역할을 넘어 청년 정치의 싹을 틔울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쓴소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의제를 가져오는 사람이 되겠다.” 원씨의 첫 대답이었다. 기성 정치는 청년 정치인에게 줄곧 쓴소리를 하는 ‘당내 야당’ 구실을 기대해왔다. 그 자체가 고정관념이라는 것이고, 그는 그런 주문에 응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원씨는 2005년 한 공중파 각막 기증 프로그램에서 시청각장애인 어머니가 개안 수술을 받은 사연으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수술 이후 어머니와 함께 소외계층을 위해 봉사했고, 대학 졸업 뒤엔 기업의 사회공헌(CSR) 분야에서 일했다.

그의 드라마 같은 사연은 영입 과정에서 이목을 끌었지만, 동시에 청년 정치를 ‘이미지 정치’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원씨도 수긍했다. 그 역시 “제가 살아온 삶을 극적으로 소개해 주목받고 싶진 않다”라며 ‘사연의 주인공’에 머물기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제 경력이 생각보다 화려하다. 사회공헌 분야에선 전문성 있다”고 맞받았다. 원씨는 “지금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냥 ‘효자 소년’으로 보일 뿐”이라며 “앞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 문제들을 테이블 위로 올려 보이겠다”고 예고했다.

원씨의 주 관심사는 ‘흙수저의 생활 기반’이다. 그가 청년을 위한 시급한 과제로 ‘돌봄서비스’를 꼽은 건 경험에서 나온 각성이다. 원씨는 “가족 중에 아프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청년들이 일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데 돌봐야 할 가족이 있다면 부담이 크다. 이걸 사회가 함께 신경 써주면 청년이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원씨는 자신을 “경제적 빈곤계층·한부모 가정의 자녀·입양 관련 가정의 일원·장애인의 가족”으로 소개했다. 약점처럼 보이는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겠다는 뜻으로 보였다. 그는 또 “기성 정치의 반대는 다양성”이라고 했다. “국회는 자리가 제한되어 있으니 다양성을 최대한 품은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다. 다만 이미 가진 정체성만 붙들고 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원씨는 “앞으로 또 얼마나 다양한 정체성이 제게 붙게 될지 기대된다”고 눈을 반짝였다.

원씨는 인터뷰 내내 버릇처럼 “너무 두루뭉술한 말이지만” “아직 잘 모르겠지만”을 덧붙였다. 노회한 정치인에게서 볼 수 없는 이 ‘어설픈’ 화법에 관해 그는 “아직 모르는 문제가 어딘가에 있다는 공포감”이라고 털어놨다. 갈 길이 먼 정치 입문자의 숙명이지만, 어쩌면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덕목일 수도 있어 보였다.

청년에게 유난히 척박한 여의도 정치토양도 원씨에게는 큰 고민거리다. 원씨는 청년 정치가 힘을 가지려면 “원내든 원외든 청년 정치인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원씨는 “저는 기반이 없는 사람”면서도 “질 자신이 없다”며 웃어 보였다. 그는 21대 총선에서 “비례도 지역도 상관없이 어디에 놓이든 1인분을 해내겠다”는 각오로 다가오는 4월을 준비하고 있다.

아래는 원종건씨와의 일문일답.

민주당 영입 소식이 발표된 뒤에 어떻게 지내고 있나?

“회사에 사직서를 냈지만 인수인계 때문에 아직 출근하고 있다. 영입 발표만 됐을 뿐 당직을 맡은 것도 아니다. 지금은 책을 많이 읽고 있고, 선배 정치인들의 행보를 보면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생각도 해보고 있다.”

정치인이 되기로 한 뒤 생긴 변화가 있다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지나쳤던 문제들이 법·제도적 고민으로 이어진다는 거다. 얼마 전 피시(PC)방에 갔다가 밤 10시 즈음 고등학생들과 알바노동자가 언쟁하는 모습을 봤다. 알바노동자는 ‘밤 10시부터 학생은 피시방 출입 금지라며 나가라’고 하고, 학생들은 ‘1월1일 지나서 담배도 살 수 있는데 왜 나가라고 하느냐’며 맞서고 있었다. 실제로 현행 게임산업법은 성인이라도 고등학교 졸업 전이면 규제 대상에 포함한다. 평소라면 그냥 넘길 일이었지만 성인의 법적 기준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이건 그 학생들도 졸업만 하면 언제 불편했냐는 듯 잊어버릴 사소한 문제지만, 적어도 그들이 그 밤 10시에 겪은 실질적 고민이기도 하다. 선거제 개편으로 투표권을 얻은 만 18살 새내기 유권자 입장을 이해하는 안목은 갓 정치를 결심한 청년이라 가능한 것 아닐까? 아마 이해찬 대표님이나 이인영 대표님은 피시방 가도 그런 생각은 못 하실 거다(웃음).”

정치 결심에 대한 주변 친구들 반응은 어떤가? 쓴소리하는 친구는 없었나?

“쓴소리보다는 가까운 친구들이 벌써 ‘아이고 원 의원 왔나’ 하면서 놀린다(웃음). 좋은 변화는 정치 얘기를 거의 안 하던 친구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가까운 사람이 정치를 결심하는 가시적인 행보 하나 때문에 생겨난 관심이다. 정치혐오까지 이어졌던 친구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민주당에서 처음에 어떻게 연락이 왔나?

“당직자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 초반엔 계속 의심하면서 ‘왜요?’ ‘왜 저죠?’ 하고 물었다. 몇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보편적 복지 사회를 꿈꾸는 민주당의 가치와 저의 가치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느끼고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게 됐다.”

최근 민주당의 ‘청년 영입 인재’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자 누리꾼들 사이에서 종건씨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보도에 대한 반응을 보고 울었다고 들었다.

“언행에 대한 생각과 사전 공부가 더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를 향한 패륜적인 댓글은 매우 아팠다. 심지어 악플을 캡쳐해 어머니에게 직접 보내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라 많이 울었다. 성인이 된 뒤 그렇게 크게 운 적이 없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달래주시진 않더라(웃음). 어머니가 이튿날 아침에 진수성찬을 차려주시면서 ‘정치를 하기로 한 이상 욕먹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변하지 마라. 앞으로 욕먹어도 매 순간 이번만큼 아파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슬프면 슬픈 만큼 울 수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국회의원이 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왜 국회의원이 되고 싶나?

“인간 원종건의 말은 기자들이 안 써주지만 국회의원 원종건의 말은 써줄 가능성이 크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국회의원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 한 번도 비치지 않은 곳을 찾아가면 조명은 그를 따라갈 것이다. 그렇게 권한과 권위를 사용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역할이고 그걸 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가 아직 비추지 못한 문제들이 어딘가 있다는 공포감을 느껴야 한다. 아직 우리 사회가 모르는 문제가 있고 그 문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때 국내외 입양이 참 많았다. 입양 간 친구들이 이제 성인이 됐고 그중 누군가는 친부모를 찾고자 할 거다. 하지만 입양아와 친부모들 데이터 관리도 잘 안 되고 있고, 비영어권 국가와 연결해야 할 때는 통역 서비스도 마땅치 않다. 정치권에서 한 번도 대두되지 않은 문제들이다. 이건 고작 하나의 예시일 뿐이고 제가 동생을 스웨덴으로 입양 보낸 당사자여서 알고 있는 문제일 뿐이다. 세상엔 이런 사각지대가 정말 많다.”

수많은 20대 청년 중에서 굳이 ‘원종건’이 국회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청년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가급적 넓게 열려있어야 한다. 지금도 당이 많은 준비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해야 할 역할이다. 제가 정치적으로 좋은 기회를 얻은 건 틀림없다. 과분하고 운이 좋았다. 하지만 거꾸로 반문하면, 저 같은 사람이 국회에 들어오면 안 되는 건가?

굳이 왜 저여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원종건이 가진 정체성이 많아서’라고 답하고 싶다. 저는 경제적 빈곤계층이었고, 한부모 가정의 자녀였고, 입양 관련 가정의 일원이고, 장애인의 가족이기도 하다.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으로 대학에 진학해서 교육 제도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어머니를 부양해야 해서 병역 면제를 받아서 병역에 대한 고민도 있다. 저는 기성 정치의 반대가 젊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성 정치의 반대는 다양성 존중이다. 국회에는 다양한 사람이 들어가야 하는데, 자리가 제한된 만큼 최대한 다양성을 품은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

여의도에는 청년 정치인을 기성 정치인보다 더 가혹한 잣대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청년 정치인이 실패하면 기성 정치인들은 너무나 쉽게 ‘거봐, 청년 정치 안 된다고 했잖아’라고 말한다. 이런 나이 든 여의도 문화에 어떻게 맞설 계획인가?

“그래서 성공해야 한다. 정치는 과정이 얼마나 좋았던, 결과가 별로면 아무 소용이 없는 냉혹한 곳이다. 그동안 여의도는 청년 정치인에게 무언가에 반대하는 역할을 주문해왔지만, 난 누군가에게 쓴소리나 충고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의제를 가져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

평균 나이 55.5살 20대 국회가 청년 문제를 어떻게 알겠나.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평일 오전 10시 반에 청년 정책 간담회를 한다는데 청년들은 그 시간에 일하고 있다. 계절학기 듣고 있다. 실제 대학생들이 겪는 문제,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바로 취업해 사회에 진출한 분들이 겪는 문제가 뭔지 관심을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이걸 함께 토론해줄 주체가 청년 정치인이어야 한다. 일단 원내든 원외든 청년 정치인이 많아져야 한다. 역대 선거 과정을 살펴보면 이번 총선처럼 청년이 크게 의제화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청년 정치인이 정말 많아질 거라는 확신이 든다. 이번엔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입 발표 뒤 종건씨의 인생 이야기에 감동했다는 반응도 있는 한편, 스타성·화제성만으로 영입된 ‘이미지 정치’의 표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보나?

“저에 대해 정리된 자료를 보면 저는 그냥 ‘느낌표―눈을 떠요’에 나온 효자 소년으로만 보이더라(웃음). 저는 사회공헌 분야에서 나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이걸 아무리 이야기해도 지금은 그냥 효자 소년일 뿐이다. 그 소년이 나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어서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제가 살아온 삶을 극적으로 소개해서 주목받고 싶진 않다.

누군가는 불쌍하게 자란 애가 생각도 없이 국회 들어와서 거수기만 하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도 있지만, 저는 제 소신이 있고 정치권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 문제들을 테이블 위로 올려 보이겠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20대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온다. 20대 남성이 ‘보수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대 남성으로서 왜 그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린다고 보나?

“보수화는 아닌 것 같다. 정치 자체에 대한 무관심층이 늘어나는 거라고 본다. 하지만 여전히 20대가 지지하는 정당을 조사해보면 1위가 민주당이다. 많은 분이 20대 남성이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고 표현하지만 그렇다고 20대 남성이 다른 당을 끌어안은 것은 아니다.”

민주당에 대한 20대 남성의 반발은 주로 페미니즘 정책에 모여있다. 청년 남성들 사이에서 강한 백래쉬(반발)가 일어나고 있지만 기성 정치권은 사실 문제를 피하고만 있다. 이를 어떻게 넘어서야 한다고 보나?

“지금의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가 젊었을 때와 달리 더 다원화됐고 점조직으로 존재한다. 청년끼리의 소통도 쉽지 않다. 페미니즘 문제는 더 본질로 들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약자의 편에 서서 공평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그 본질이다. 지금은 20대 안에서 남성과 여성을 나누지 않는 공통의 문제를 찾고 싶다. 그러면 점점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예컨대 청년 주거안정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 안에 여성들이 겪는 치안 문제 등의 디테일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문라이트>에 ‘달빛 아래선 모두 블루’라는 대사가 나온다. 여성 인권과 인종차별 문제를 크게 다룬 영화인데, 모두 똑같은 사람이고 평등한 세상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이 주제다. 그런 진리가 통하는 세상을 이뤄내고 싶다. 다소 재미없을지라도 나중에 저의 큰 행보가 보일 때 ‘이 친구가 이 이야기를 하려던 거구나’ 하고 보이면 좋겠다.”

정치인으로서 집중하고 싶다고 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 문제와 연결되는 것 같다. 구체적인 정책 구상이 있다면?

“지금의 청년 정책은 ‘청년 정책’이라는 말만 있고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르다. 청년 문제가 너무 다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대 국회만 봐도 청년 정책이 주요 아젠다가 된 적은 별로 없다. 항상 논외였다. 일단 논의되는 정책의 반영률부터 높여야 한다.

청년 가장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일단 세 가지 걱정만 줄여줘도 좋을 것 같다. 우선 주거안정, 좋은 집은 아니어도 쫓겨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의료서비스.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아플 때 병원비가 많이 들어가면 청년 가장들은 정말 대책이 없다. 세번째는 돌봄서비스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청년들이 일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데, 돌봐야 할 가족이 있다면 부담이 크다. 이걸 사회가 함께 신경 써주면 청년이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코다(청각장애인 부모 아래서 태어난 아이)로서 자라면서 장애 정책의 사각지대도 느꼈을 것 같다.

“당연하다. 어머니는 후천적으로 시청각장애를 가지게 됐다. 학창시절에 청각 장애가 생겼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저를 데리고 노숙을 하면서 영양실조로 각막 손상이 생겨 시각 장애도 생겼다. 수술을 받아 시력을 얻었지만 청각 장애는 남아 있다. 제가 어릴 때 어머니랑 모자보호소(무주택 저소득 모자가정 일시 보호기관)에 살았는데 다른 모자들도 혜택을 받아야 해서 1년 뒤엔 나가야 했다. 모자보호소는 1년동안 자립하도록 직업교육을 해주는데, 제 어머니만 그때 취업을 못 했다. 직업교육에 장애인 관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엔 끝이 없다. 청각장애인들은 정부에서 수어통역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예약 시스템이 불분명한 문제도 있다. 부산에 사는 청각장애인이 서울에 일이 있을 때 어느 지역 통역사를 불러야 하는지 등 기본적인 문제들마저 애매하다. 복지 서비스에 디테일이 없으면 임신한 청각장애인이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때 남성 통역사가 출장을 나가는 일도 생긴다.

저는 코다의 정체성으로 고민을 이어왔지만, 이동권 장애인·발달장애인 등에게도 각기 다른 문제가 있다. 계속해서 소외된 사람이 없는지 사회서비스가 어떻게 나아져야 하는지 고민을 국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앞으로 저에게 얼마나 다양한 정체성이 붙게 될지 기대된다. 정치권이 ‘내 문제는 안 다뤄준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다 제게 오셨으면 좋겠다. 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현실 정치에 뛰어들면서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

“청년 프레임에 갇히고 싶지는 않다. 난 10대에게는 형이고 오빠다. 20대에게는 친구고, 30∼40대에게는 후배나 조카. 50대 이상에게는 아들이다. 난 20대만을 위해 정치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나의 정치가 다양해지면 좋겠다.”

보수적인 관료들과의 기 싸움, 조직 관리, 자금 동원 등 정치인으로서 실질적으로 맞닥뜨려야 할 고비가 한둘이 아니다.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어딜 가든 저한테 ‘경력이 없다’고 우려하시는데, 사실 제 경력 꽤 화려하다(웃음). 절대적 시간이 부족해서 50대 누군가보다 상대적으로 업력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제 나이에 비해서 전문성이나 경험이 부족하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저는 민간기업(이베이코리아)을 다녔지만 운이 좋게도 회사에 사회공헌 담당자는 저 하나였고 저에게 모든 권한이 있었다. 사회초년생이지만 사회공헌 분야에선 다양한 일을 직접 기획하고 꾸려왔다. 자신 있다. 저는 기존 국회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고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걸로 응수하고 싶다.”

앞으로 크게 지역구 출마와 비례대표 출마, 두 가지 길이 열려있다. 어느 쪽을 택할 생각인가?

“비례도 상관없고 지역도 상관없다. 당에서 저를 써주는 곳이면 어디에 놓이든 1인분 해낼 수 있다. 저 생각보다 약하지 않다. 질 자신이 없다(웃음). 하지만 분명한 건 선수 높은 국회의원들도 정치를 혼자 하진 않는다.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다. 전 기반이 정말 없는 사람이다. 당이나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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