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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길섶에서] 무심(無心)/장세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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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대표 사진사는 나다. 가족 여행이나 집안 대소사 때 자꾸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하다가 원성을 듣기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필름 카메라를 쓰던 시절에는 앨범 정리까지 염두에 뒀지만 지금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가족들과 SNS로 공유하면 그만이다.

연초에 친척 결혼식이 있었다. 올해 팔순인 아버지부터 결혼 후 만날 기회가 부쩍 줄어든 여동생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가족사진을 찍을 절호의 기회였고, 그렇게 했다. 여동생은 SNS 프로필 사진을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바꾸고 ‘아빠하고 나하고’라는 이름도 붙였다.

부러웠는지 휴대전화에 담긴 사진을 넘겨 보다 아버지와 내가, 부모님과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한참 전에 찍은 사진들을 뒤져도 마찬가지다. 같은 공간엔 있었으나 같은 사진엔 없다. 참으로 무심했다.

휴대전화의 카메라 기능이 좋아지면서 사진이 흔하디흔한 세상이 됐지만 정작 소중한 사진 한 장을 남기는 데는 소홀했다. 소중한 사람의 사진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의 사진이 아쉽다. 무심한 게 어디 사진뿐이겠나. 머리에서 시작된 생각이 가슴으로 넘어가니 콕콕 찌른다. 곧 설 연휴다. 평소의 무심함을 덜어내는 명절 되시길.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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