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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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하나금융투자 소속 애널리스트 A(39)씨는 코스닥 종목인 T회사에 대한 신규 보고서를 발표했다. 향후 실적이 좋아질 것이란 내용이었다. 투자 의견을 '매수'로 제시했고, 목표 주가는 3만원으로 잡았다. 이 회사의 전날 종가는 1만8950원. 일부 언론이 이 내용을 기사로 작성했고, T사의 주가는 나흘 연속 올랐다. 이 기간 상승률은 무려 34%였다. A씨는 3주 뒤 T사 보고서를 또 냈다. 목표 주가는 4만1000원으로 올렸다. 상승세를 탄 주가는 2월 말 3만1700원까지 올라, 첫 보고서가 나오기 직전과 비교해 67% 급등했다.
알고 보니 이는 A씨가 계획한 시나리오였다. 차명 계좌를 이용해 주식을 미리 사놓고(실제 T사 주가는 보고서 배포 3~4일 전부터 급등했다) 보고서를 쓴 뒤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팔아 거액의 차익을 챙겼다. T사 보고서만 5개월간 네 차례 내놨다. 이는 최근 검찰에 구속기소 된 A씨의 주식 부정거래 수법을 취재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사례다.
한때 '자본시장의 꽃'이라 불리던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불법 주식 거래 혐의로 구속되면서 금융투자업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불공정 거래 사건에 가뜩이나 심한 업계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우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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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낸 뒤 코스닥 종목 주가 한 달 새 67% 급등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지난 20일 A씨를 자본시장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수재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A씨는 2015년 6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특정 종목을 '매수' 추천하는 보고서를 작성하기 전에 친구인 B씨에게 알려 해당 종목을 미리 사게 했다. 관여된 종목만 수십여 개다. B씨는 A씨가 보고서를 낸 뒤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파는 방식으로 7억6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얻었다. A씨는 그 대가로 B씨에게서 현금 등 6억원을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실제 (A씨가 얻은) 이득은 이보다 많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수십억원에 달할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이번 사건은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지난해 9월 서울 여의도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를 압수수색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특사경은 주가 조작 등 자본시장의 불공정 거래 행위 수사를 목적으로 지난해 7월 만들어진 조직이다. 이때부터 증권가에선 "A씨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고가 아파트를 대출 없이 현금으로 샀고, 이를 의심한 정부 기관에 덜미가 잡혔다"는 등의 소문이 돌았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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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투자 연구원 검찰 구속
업계는 회사의 내부 통제나 시스템 문제라기보단 개인의 도덕적 해이 탓으로 보고 있다. 애널리스트의 주식 거래가 금지돼 있고, 사내에서 윤리교육을 수시로 하는 데도 불거진 문제여서다. 하나금융투자 관계자는 "연구원 개인의 일탈 행위 문제로, A씨에게 휴직 명령을 내린 상태"라며 "앞으로 윤리교육 등을 강화해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애널리스트의 불공정 거래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2015년엔 KB투자증권(현 KB증권) 애널리스트가 특정 종목을 띄워주고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2014년에는 'CJ ENM 실적 유출 사건'으로 금융당국에 애널리스트들이 줄소환되기도 했다. 특히 'CJ ENM 사건'은 상장사 기업설명(IR) 담당자와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의 '밀월관계'가 드러나면서 큰 파장을 불렀다. 당시 CJ E&M 측은 분기 실적 발표 전에 일부 애널리스트에게 영업이익이 시장 전망치의 절반 수준일 것이라고 귀띔했고, 애널리스트들은 이를 친분이 있는 펀드매니저에게 알렸다. 펀드매니저는 하루에 406억원어치 주식을 내다 팔았고, 주가는 9.45% 급락했다. 그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들만 피해를 떠안았다. 이에 금융위원회가 애널리스트 등을 검찰에 넘긴 바 있다.
김충우 금감원 조사기획국장은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조사 계획을 갖고 있진 않지만, 각종 불공정 거래 행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애널리스트가 연루된 게 발견되면 신속히 조사해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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