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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녹아내리는 노동]데이터가 법적으로 ‘물건’이라면, 활용 기업에 대가 물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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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데이터 소유권

경향신문

그래픽 | 윤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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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를 비롯한 데이터는 ‘물건’일 수 있을까. 데이터가 ‘21세기 자본’으로 부상하면서 법적 성격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프라이버시 보호 측면과 함께 정보 주체의 데이터 소유권을 입법을 통해 보장하려는 시도도 있다.

“데이터 3법, 개인정보 도둑법”

기업들의 이윤 창출 수단으로

동의 없이 ‘가명정보’ 활용 가능


지난 9일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을 묶은 이른바 ‘데이터 3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데이터 3법’을 ‘민생법안’으로 이름 붙인 정부는 곧바로 환영 입장을 내놨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자원인 데이터 개방·유통 확대를 추진”하고 “가명처리, 데이터 결합 등으로 생산된 다양한 데이터의 구매·가공과 인공지능(AI) 활용을 지원해 금융·의료·스마트시티·자율자동차 등 분야에서 혁신적 서비스를 창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부와 업계는 시종일관 ‘개인정보 보호 규제를 풀지 않으면 핵심자원인 데이터를 활용하지 못해 국제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시민사회가 ‘개인정보 도둑법’이라며 우려했지만, 국제 경쟁 논리 속에 묻혀버렸다.

시민사회가 데이터 3법을 개인정보 도둑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기업 등이 ‘가명정보’를 활용해 당사자 동의 없이도 상업적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가명정보는 익명정보와 달리 다른 정보와 결합하면 누구 정보인지 알 수 있다. 기업들은 가명정보를 개인별 맞춤형 상품 개발 등 이윤창출 수단으로 쓸 수 있다. 보험사가 보유한 운전보험 정보와 통신사의 운전습관 정보를 결합 분석해 맞춤형 보험상품을 내놓는 식이다. 가명정보에는 건강정보, 신용정보 등 민감한 개인정보도 포함된다. 개인은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지 못한 채 기업 돈벌이에 무상으로 기여하게 되는 셈이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넘어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플랫폼노동 종사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도 비슷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사단법인 참세상이 인권위 용역을 받아 수행한 연구보고서에서 김철식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플랫폼 기업들이 이용자들의 노동과 콘텐츠를 무상으로 수취해 수익의 원천으로 활용하는 현상에 대해 지금까지는 주로 개인정보 수집과 인권 실종,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측면에서 문제제기가 이뤄져 왔다”며 “이를 넘어 플랫폼 기업의 독점적 초과수익 규제와 사회적 환원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데이터 소유권’ 개정안 발의돼

“정보 제공 대가 받을 수 있도록”


그런 가운데 개인의 ‘데이터 소유권’을 법적으로 보장해 데이터 거래를 활성화하려는 시장주의적 접근법이 국회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은 민법상 ‘물건’에 데이터를 포함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 민법은 ‘유체물(공간의 일부를 차지하고 사람의 감각에 의해 지각할 수 있는 형태를 가지는 물건)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풍력·수력·원자력 등)’을 소유권의 대상인 물건에 포함하고 있다. 이를 ‘유체물 및 전기나 데이터 등 관리할 수 있는 무체물’로 고치려는 것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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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이 당장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다만 데이터 기반 산업의 성장으로 개인정보의 수집·활용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법이 개정되면 정보 주체인 개인은 자신의 정보를 판매해 수입을 올릴 수 있고, 기업은 대가를 지불한 뒤 이 데이터를 가공해 상품을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법안 성안에 참여한 가천대 AI·빅데이터 연구센터장 최경진 교수(민법 전공)는 “모든 데이터에 대해 부동산처럼 일반적·전면적 소유권을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소유권의 성질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데이터에 대해서도 소유권을 인정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여지를 만들려는 것”이라며 “데이터를 가진 사람 입장에서는 데이터 제공에 따른 대가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고, 사는 사람에겐 양질의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양자를 모두 충족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연 의원은 이 법안이 기술 변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의 대안이 될 것으로 본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영역이 많아지는데, 일자리를 잃을 국민들을 어떻게 ‘케어’할까 하는 고민에서 정부 재원 측면으로는 로봇세, 개인 소득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으로는 데이터 소유권을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유럽 등에서도 데이터 소유권 보장 논의가 있지만 법에 규정한 곳은 아직 없다.

■ ‘데이터 기본소득론’ 주장 팀 던럽 “데이터, 총합으로 모여야 비로소 가치…개인 협상보다 국가가 나서야”

경향신문

<노동 없는 미래>의 저자인 호주의 정치철학자 팀 던럽이 지난달 4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데이터가 디지털 경제의 자원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데이터로 얻은 혜택 대부분을 플랫폼기업들이 누리고 있다는 지적도 영미권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호주의 정치철학자로 <모든 것의 미래>(Future of Everything·미번역)의 저자인 팀 던럽은 데이터에서 나오는 이익을 기본소득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리는 이렇다. 데이터는 모두가 참여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공공이 소유해야 한다. 개별 데이터의 가치는 크지 않고 데이터의 총합에서 비로소 가치가 나온다. 그런 점에서 이용자가 개별 협상을 통해 몫을 받아내기보다 국가가 나서서 기본소득 형태로 재분배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것이다.

던럽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데이터는 석유나 철광석 같은 지하자원처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유재”라고 말했다. 던럽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서울시 초청으로 방한했을 때 이뤄졌고, 지난 18일 e메일 인터뷰로 보완했다.

- 데이터가 왜 공유재인가.

“사람들이 구글 검색이나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할 때 데이터를 입력하는데 엄청난 데이터가 축적된다. 나 한 사람이 가진 개별 데이터는 가치가 크지 않지만 데이터의 총합 가치는 엄청나다. 그런 점에서 데이터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유재(commons)이다. 석유나 철광석 등 지하자원과 비슷하다. 기업들이 지하자원을 캐낼 때 로열티를 내야 한다. 묻혀 있는 지하자원 자체는 그들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데이터 소유권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수의 기업가가 그걸 이용해 엄청난 부를 얻게 된다.”

- ‘혁신’ 기업가들 몫을 인정할 부분도 있지 않나.

“기업가가 데이터를 이용해 부를 얻는 것은 좋다. 그걸 모아 우리 모두에게 유용한 방향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가 가진 공유재적 성격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모두 그들 소유로 가는 것이 문제다.”

- 일부 데이터는 사유재산 성격이 있어 소유권의 대상으로 하자는 입법 논의도 있는데.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다만 데이터를 사유재산으로만 취급하면 개인이 데이터를 활용하는 다양한 플랫폼들과 개별적인 관계를 가져야 하고, 자기 데이터에 대한 개인적 보상을 놓고 협상을 하는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 개별 데이터의 가치는 그리 높지 않다. 데이터는 우리 모두가 참여해 만들어내는 것이고, 총합으로 모여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치가 높아진다. 따라서 어떤 데이터는 사유재산에 해당할지라도 데이터는 공유재로 취급하는 것이 훨씬 이치에 맞다.”

던럽은 ‘시티즌미(CitizenMe)’ ‘데이터쿱(DataCoup)’처럼 데이터에 대가를 지불하는 앱들을 사례로 들었다. 각각 영국과 미국에 기반을 둔 두 스타트업 서비스를 모두 써봤지만 ‘쓰레기 재활용’에 대한 질문 4개에 답해주는 대가로 영국돈 30페니(약 450원)를 벌 수 있을 뿐이었다고 했다.

- 유럽연합(EU)에서 데이터 소유권 입법 논의가 있는데.

“EU의 논의는 데이터의 개인 소유권을 인정함으로써 기업들에 데이터를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의무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그 의무는 프라이버시 보호에 국한된다. 데이터를 준 개인의 허락 없이 다른 곳에 이용하지 않고 팔아먹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데이터에 대한 보상, 혜택을 주는 법은 아닌 셈이다. 그런 측면도 중요하다. 하지만 데이터를 축적해 고도화하는 인공지능(AI)으로 인해 임금 받는 노동이 점점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프라이버시 보호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노동을 대가로 얻어지는 기업의 엄청난 이익을 나누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 ‘공유부(富)’를 어떻게 나눠야 한다고 보나.

“정부가 세금을 걷어 보편적 기본소득 같은 사회적 배당금을 시민들에게 재분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들어본 가장 좋은 해법은 그리스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것이다. 그는 ‘보편적인 기본배당’을 제안했다. 이 설계에 따르면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들이 일정 주식을 공공이 소유한 것처럼 배당해야 한다. 그것은 실질적으로는 정부 소유 주식으로 이전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정부는 그 주식에서 발생하는 시민들 몫을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인 지급 형태의 배당으로 배분하게 된다.”

던럽은 이런 방식이 이미 미국 알래스카에서 채택됐다고 했다. 알래스카주는 석유를 공유재로 인식하고, 석유 판매로 얻는 이익을 기업이 독식하기보다 시민들에게 기본소득으로 분배하는 ‘알래스카 영구펀드’를 1976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석유뿐만 아니라 데이터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기자의 얘기에 던럽은 이렇게 말했다. “결국 정치의 문제다. 경제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들을 상대로 세금을 올리거나 새로 걷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게 정치의 본질이다. 큰 정책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나 어렵다. 하지만 진보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이 논쟁의 출발점이 돼야지, 논쟁의 끝이 돼서는 안된다. 단지 정치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어떤 선택지를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하면 안된다. 그러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정대연·손제민·최미랑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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