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쟁이들의 '야구공작소'를 만나다
야구 데이터분석원 셋 중 두명 배출
의대생, 개발자, 수학자 등 모여
선수 출신 아니라는 벽 깨고 싶어
"야구를 다양하게 보는 사람들 늘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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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야구단 드림즈를 이끄는 백승수 단장의 동생 백영수는 데이터 분석원으로 특혜 채용됐다는 오해를 받는다. 이 일로 형은 단장을 그만둔다. 여론이 극적으로 돌아선 건 그가 한 커뮤니티에서 칼럼 ‘더위는 모든 것을 바꾼다 야구마저도’를 쓴 ‘로빈슨’이라는 게 알려지면서다. 소개된 글에서 로빈슨은 폭염이 예년 같은 시기와 비교했을 때 타자들의 장타율과 투수들의 평균자책점(ERA)을 높였다며 여름 야구 때 장타에 강한 타자들을 배치할 것을 조언하고, 결과적으로 그의 예측은 맞아떨어진다. 그는 “야구도 안 해 본 놈”이라며 분석을 믿으려 하지 않는 코치진을 설득해 선수들을 성공적으로 영입하는 등 드림즈의 재건에 힘을 보탠다.
야구 통계에 정통한 백영수의 활약은 구단에서 ‘데이터 야구’를 강조하는 최근 현실을 반영했다. 백영수가 쓴 글로 소개된 글은 야구 콘텐츠 제작 커뮤니티 ‘야구공작소(야공소)’에서 실제 원문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한두 명씩 알음알음 뽑던 데이터 분석원은 국내 구단에서 15명 안팎으로 늘었다. 이중 10명이 야공소 출신으로 주목 받고 있다.
데이터 분석이란 선수의 자세, 특정 플레이 습관을 바탕으로 경기력을 분석하는 전력 분석원과 달리 승부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 중 유의미한 패턴을 발견해 전략적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이전에는 ‘공 끝이 좋다’고 투수를 직관적으로 평가했다면 공의 분당 회전수(RPM), 체공시간(FL), 릴리스 포인트(쥐고 있던 공을 마지막으로 놓는 위치) 등의 지표를 분석, 종합하는 형태다. 나아가 향후 우승 목표 수립, 트레이드나 신인 선수 선발 등 선수 자원 관리, 운영 비용 절감, 등 거시적인 의사결정에도 활용되고 있다. 데이터 분석원들이 늘어나는 건 선수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야구단 프런트(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 벽을 깨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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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부터 축구분석가까지 "'하는 야구' 말고도 야구에 기여하고 싶어요" |
이날 모임은 KT WIZ에서 데이터 분석원으로 일하는 이희원(사진·30)씨가 열었다. 이씨는 인천 문학 구장이 자리한 동네에서 자라나 매일 야구장을 드나들며 야구 보는 눈을 키웠다. 데이터에 대한 관심으로 야공소를 만들었고 전공(고려대 가정교육학)과 달리 데이터 분석을 업으로 삼게 됐다. 그는 스토브리그(시즌이 끝난 뒤의 전력 보강 기간)를 맞아 야구 데이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을지 노하우를 공유했다. 그가 “데이터를 아무리 정교하게 분석해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기 때문에 중학교 1학년도 이해할 수 있게끔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게 중요하다”며 수업을 연 취지를 소개하자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KT와 두산의 경기에서 2회 말 KT 로하스의 타격이 예시 장면으로 쓰였는데 중계 영상에서 로하스가 방망이를 휘두르기도 전에 회원들은 “이날 로하스 초구 홈런 때렸잖아”라며 알아봤다. 중간 중간 주고받는 농담마저 야구 선수, 역사, 구단 성적 등의 방대한 지식이 섞여 있어 따라 웃기가 쉽지 않았다.
이후 해당 경기의 투구 수만큼의 데이터를 가지고 구종별 구사도를 만들던 도중 발표자가 잠깐 막히자 수학 전공자인 다른 회원이 해결책을 줬다. 원하는 데이터를 뽑아내기 위해 타석에 선 타자가 좌우타자일 경우 데이터를 어떻게 분류할지에도 서로 의견을 보태며 배움의 밀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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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에서는 갓 입사한 백영수가 코치진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신인 드래프트 등 의사결정에서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이 같은 그림을 당장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데이터 분석 결과를 가져가도 이를 받아들이는 건 감독, 코치진의 영역이다. 또한 통계 전문가들이 금융, 보험업계에서는 고급 인력으로 대우 받는 것과 달리 선수 출신 일색의 구단에서는 비주류에 가깝다. 데이터 분석 자체가 승리라는 성과와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시각 때문에 데이터 분석원이 넘어야 할 벽은 있다. 하지만 현실 로빈슨들은 그저 야구가 좋다는 마음이 우선이다. 이씨는 “좋아하는 게 일이 되면 다르다고 하는데 여전히 즐겁다. 새롭게 ‘머니볼’을 발굴할 사람들이 많이 도전해서 야구를 다양한 시각에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바람”이라며 웃었다. /정혜진·이종호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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