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뮤지컬 '영웅본색' 월드 프리미어 공연이 한전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가운데, 왕용범 연출과 유준상을 만났다. 무려 10년도 더 된 작품에 영화의 오마주를 삽입하며 '영웅본색'의 작품화를 희망했던 왕연출의 꿈이 현실이 됐다. 유준상은 그 꿈을 실현케 해준 첫 번째 배우다.
"중국 영화 콘텐츠들이 뮤지컬로 만들어진 적이 전혀 없어요. 포츈스타라는 영화 기획사가 중국서는 1, 2등 하는 제작사인데도, 경험이 없다보니 뮤지컬이라는 걸 설명하는데 오래 걸렸죠. 첫 공연을 보고 다들 굉장히 만족했어요. 홍콩에서도 도로 가져가고 싶다는 반응은 물론이고, 가장 먼저 콜이 온 게 미국 라스베이거스였어요. 설이 지나면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될 것 같아요. 세계 관객들이 영상물로 접했던 홍콩영화의 추억을 갖고 있고, 세계시장을 타깃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돼요."(왕용범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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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의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초고화질 LED로 구현된 무대다. 왕연출은 영상으로 제작된 LED 무대에 제작비가 훨씬 많이 들었다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통해 얻은 것들이 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당초 그가 그렸던 그림만큼 작품이 잘 나왔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작품 콘셉트 잡을 때 '홍콩은 빛의 도시'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실사같은 영상을 쓰기로 결정했죠.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의 제약을 없애고 영화같은 템포와 상황을 구현하고 싶었거든요. 실제로 제작비가 훨씬 많이 들었어요.(웃음) 쓰다보니 극장 전압이 모자라 스왑할 정도로 국내서는 쓰지 않던 기술이죠. 관객 일부는 '아이맥스관에서 뮤지컬을 봤다'고 표현해요. 실제로 4K 이상의 화질을 구현하고 있고 배우들도 홍콩에서 실제 연기하는 것 같다고 해요. 뿌듯하죠. 새로운 시도는 늘 두렵지만 또 다른 무대 화법들에 대해 고민해요."(왕용범 연출)
"브로드웨이 공연을 봐도 요즘은 LED 화면을 많이 써요. 그런데도 전 신이 다 영상으로 구현되는 건 우리나라에서 처음이죠. 연습실에서 장면이 바뀐다고 얘기만 듣다 리허설 하면서 다들 감탄했어요. 매 신 무대에서 진짜 영화 한 편 찍는 느낌이에요. 물론 영화도 많이 찍어봤지만 한 테이크씩 찍는 것 이상으로 매 신 소중하게 임하고 있죠. 공연 전 마지막 2주일을 앞두고 연출님과 모든 배우들이 단 1초를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 훈련을 했어요. 영화 보다가 루즈한 신이 나오면 잠시 머뭇거리잖아요. 당연히 지루한 신이 있을 수 있지만 1초씩 더 아껴서 템포감을 주려고 노력했죠. 뮤지컬엔 편집이 없으니 자체편집을 하면서 신들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하하."(유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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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만들기보다 재밌는 뮤지컬을 제작하고 싶었어요. '영웅본색'이 그 시절 일종의 문화적 현상이었잖아요. 폼잡기보다는 축제처럼 즐기시길 바랐죠. 돈의 가치보다 명분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 오히려 젊은 세대들이 신선해하기도 하고, 가족들이 오셔서 서로 이해하는 모습도 봐요. '커튼콜 맛집'이란 얘기도 많이 듣는데 많은 분들이 마지막에는 모두 즐기면서 나갔으면 좋겠단 생각에 그렇게 구성했죠."(왕용범 연출)
특히 왕연출은 전작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해 '잭더리퍼' '삼총사' 등에서 보여준 특유의 구성 기법으로 '영웅본색'의 스토리를 재구성했다. 1막에서 사건들이 영화만큼이나 빠른 템포로 전개되지만, 2막에서 플래시백을 통해 또 다른 장면과 다른 인물의 시각을 보여주는 식이다. 왕연출은 자호와 자걸의 입장을 각각 보여주며 관객들이 두 사람을 깊이 이해하길 바랐다.
"결국 형과 동생, 세대간의 갈등이죠. 서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데, 형의 입장에서 한번 동생 입장에서 한번 보여주고 싶었어요. 결국 마지막에는 서로를 이해하지만 각기 다른 시점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요. 서로 다른 세대, 형의 말이라면 무조건 싫고 동생의 행동은 치기 어린 것만 같지만 다들 이유가 있거든요. 시점을 다르게 해서 사건을 보게 함으로써 단순히 '둘이 화해했다'가 아니라 관객도 둘의 입장을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는 계기를 주고 싶었죠. 마지막에 자호가 스스로 수갑을 차고 자걸과 함께 걸어가는데 누구에 의해 채워진 것인지 모를, 미묘한 느낌이 들어요. 그 수갑이 저는 마음이라 생각해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 이 길을 함께 걷자는 의미죠. 그렇게 걸어가는 형제의 뒷모습이 허무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진심으로 느껴지길 바랐고요. 다행히 모든 분들이 공연 보고 다시 포스터를 볼 때 '포스터 좋네' 하시더라고요. 거기서 만족해요.(웃음)"(왕용범 연출)
왕연출과 인터뷰하면서 유준상은 특별히 감격스러운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예전엔 뮤지컬로 인터뷰해도 제 개인적인 얘길 더 많이 물어보셨다"면서 작품 자체에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감사했다. 왕연출과 꾸준히 창작뮤지컬을 만들고, '영웅본색'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얻은 것들이 큰 변화로 체감되는 듯 했다. 특별히 유준상은 이번 '영웅본색'에 함께 하는 신선한 얼굴들의 캐스팅에도 조력자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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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철 배우에게 '나 영웅본색 하는데 오디션 한번 보라'고 얘길 했어요. 세상에 너무 고맙다고 하더니만 '형 저 마크예요' 하는 거예요.(웃음) 사실 아성을 하게 될 줄 알았어요. '진짜 좋은 기회다. 죽을 힘을 다해라'고 해줬죠. 뮤지컬을 오래 안했는데도 다 집어 삼키더라고요. 마음에 무대가 계속 자리잡고 있었던 거죠. 노래도 정말 잘해요. 뿌듯하죠. 누아르라 대사가 많지 않아요. 그 안에서 인물들의 관계성을 찾아내기 위해 작은 디테일을 지금도 발견하는데 그때마다 기쁘죠. 역시 창작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신 속에서 새로운 감정을 찾아내고 만나게 돼요. '삼총사'를 10주년 넘게 하면서도 새로운 것들이 생겼거든요. 페어별로 만나는 친구들이 계속 달라져서 새로운 느낌이 오니까 매일 재미가 달라요. 창작만의 묘미죠."(유준상)
'프랑켄슈타인' '벤허'로도 이미 성공적인 국내 창작뮤지컬의 역사를 썼지만 왕연출의 도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국내 시장만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들지 않기에 앞으로 좋은 소식이 들려올 가능성도 크다. 왕연출은 올해 또 다른 창작뮤지컬 '글루미 선데이'와 '베르사유의 장미' 초연을 앞두고 있다. 한국을 빛낸 K팝의 BTS와 영화의 봉준호 감독처럼, 그는 이제 글로벌 뮤지컬 시상식에서 우리나라의 이름이 불릴 날을 꿈꾼다.
"지금도 만족스럽지만 모든 작품은 개선의 여지가 있죠. '레미제라블'도 지금도 무대를 바꾸거든요. 성장해나가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라이브 공연의 매력이죠. 작품이 성공할수록 좀 더 투자해서 더 좋아질 거예요. 개인적으론 지금 자걸하는 한지상 배우가 5년 후 마크하고 10년 후 자호하면 어떨까 싶어요. 유준상 선배가 10년 후에는 견숙하고요. 하하. 라스베이거스에서 우리 오리지널 작품을 가져가고 싶다고 하고, 일본에서 오리지널 배우, 원작자라고 소개와 박수를 받는데 그건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몰라요. 단순히 좋은 게 아니라 한편으로 국위선양했다는 마음이죠. 지금도 일본, 중국, 대만에서 '프랑켄슈타인'을 계속 보러 오고 어떻게 연계될 수 있을까 상의도 해요. 그동안 헌신한 결과들이 꽃피는 것 같아요. 더 노력해야겠지만 머지 않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 만나듯 토니상에서 한국 사람 이름이 불리는 순간이 올 거라 생각해요. 더 응원해주시고 함께 즐겨주시면 좋겠어요." (왕용범 연출)
jyya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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