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김태형, 덕수궁 신년 음악회'서 연주
"모차르트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이 곡만 빼고 전부 장조로 썼어요. 오늘 연주할 곡이 유일한 단조 음악이죠. 어머니가 여행 중에 돌아가셨는데, 그 직후에 쓴 곡이에요."
짧은 소개와 함께 정경화는 활을 그었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제21번 마단조'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훌륭한 예술가가 그러하듯, 정경화는 '첫 장면'의 비밀을 아는 연주자였다. 오프닝이 독자나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데 성공하면, 그 작품의 '정수'가 쉽게 끝까지 독자나 관객의 마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정경화는 때론 읊조리듯이, 때론 목놓아 울듯이 모차르트를 연주했다. 조금 감정이 지나친 지점이 있었지만, 긴장과 이완을 넘나드는 그의 연주는 설득력이 있었다. 여기에 영롱한 김태형 피아노 소리가 곡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최근 슈베르트 독주회에서 빼어난 실력을 보여준 김태형은 모차르트의 투명함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연주자였다.
문화재청, '정경화와 함께하는 덕수궁 신년음악회' 개최 |
두 번째 곡인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7번'은 정경화 장기를 여실히 보여준 곡이었다. 열정적인 그의 연주 스타일은 베토벤 음악과 궁합이 잘 맞았다. 첫 음부터 전해지는 정경화의 강력한 비브라토는 열정적인 연주가 될 것을 예고했고, 그는 이 같은 기대에 정확히 부응했다. 특히 4악장에서 정경화와 김태형이 주고받는 감정들은 마치 눈 위를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점점 커지더니 절정에서 가서 기어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마지막 곡은 이미 소진된 관객들의 감정을 여지없이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야말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이었다.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가장조'는 60대에 이른 프랑크가 결혼하는 외젠 이자이에게 헌정한 곡이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데다 기교도 화려해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한 번쯤 연주해보고 싶은 곡이다.
젊은 시절부터 이 곡을 연주한 정경화는 오랜 시간 동안 절차탁마한 만큼 작곡가 내면을 깊이 들어가 본 듯했다. 늙음에서 오는 한숨과 젊음에 대한 부러움, 후배의 앞날에 대한 격려 등 다양한 감정을 담은 이 곡을 정경화는 때로는 풍성하게,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완만하게 연주하며 감정을 적절하게 컨트롤해 나갔다.
작곡할 당시 프랑크와 비슷한 연배가 됐기 때문인지, 정경화 연주에는 인생의 어떤 지점을 통과한 이만이 얻게 되는 세월의 힘이 담겨 있었다.
"저는 (작곡자의) 메신저일 뿐입니다. 제 속에서 나오는 음악이 여러분 인생 어딘가에는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날 연주회의 앙코르곡은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 '사랑의 기쁨'이었다.
덕수궁 석조전 가득 채우는 정경화의 선율 |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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