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5시50분 우한에서 출발한 기차가 베이징서역에 도착하자 우한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채 출구를 빠져나오고 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아시아경제 베이징=박선미 특파원] "폐렴? 별로 대수로운 일 아니예요. 마스크를 썼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우한에서 지금 막 베이징에 도착했는데 춘제(설) 연휴 기간 동안 관광을 하다가 돌아갈 예정입니다."
중국 곳곳에서 사람 간 전염이 확실시된 '우한폐렴' 확진 환자가 하루에도 수십명씩 늘고 있지만 정작 중국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기자가 21일 늦은 오후에 찾은 베이징 기차역은 본격적인 춘제(중국 설, 24∼30일) 연휴를 앞두고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톈안먼을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한 베이징서역은 우한에서 오는 기차 대부분이 도착하는 곳이다. 우한폐렴 발원지로 알려진 우한화난수산도매시장과 가장 가까운 한커우역과 우한역, 우창역에서 출발해 베이징에 도착하는 기차는 하루 40여편에 달한다.
수십억명이 이동하는 춘제를 앞두고 21일 저녁 베이징서역 내부 모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오후 5~7시 사이 몇십분 간격으로 우한 지역에서 오는 기차가 잇따라 베이징서역 플랫폼에 도착하자 마스크를 쓴 우한시민들이 출구쪽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승객 대부분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점은 평상시 기차역 풍경과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방제복을 입고 소독을 하거나 개인별 검사를 하는 직원은 눈에 띄지 않았다.
기차역 출구에서 만난 40대 남성 우한 시민 피셩션씨는 설 연휴를 맞아 베이징을 관광차 방문했다고 했다. 그는 "우한역에서 기차 탑승 전에 열화상 탐지기가 설치된 통로를 거쳤다"며 "기차 안에서는 이동 시간 동안 특별히 실내 내부를 소독하거나 하는 방역활동을 목격하진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한에 살지만 우한화난수산도매시장에 간 적도 없고 증상도 없어 베이징 여행이 망설여지지 않았다"면서 "마스크를 썼으니 됐지 않냐"고 반문했다. 피씨는 "우한 시민들이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 심한 공포감을 느끼진 않고 있다"며 "약속을 줄이고 외출할 땐 마스크를 챙겨 쓰는 정도의 보호활동을 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우한에 사는 20대 여성 직장인 장씨도 설 연휴를 맞아 베이징에 놀러 왔다고 본인을 소개하며 "우한폐렴 뉴스가 떠들썩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한 내 분위기도 공공장소 소독이 좀 빈번해졌고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부쩍 늘었을뿐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때처럼 공포스럽진 않다"고 전했다. 그 역시 "우한역에서 출발할때 열화상 감지기를 거쳤다"고 전하며 "그 외에 베이징으로 오는 기차 안이나 역 도착 후에 특별한 방역 조치는 경험하지 못했다"고 했다.
기차역 진입구쪽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차 출발 플랫폼으로 연결된 진입구쪽은 각 지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틈이 없었다. 베이징에서도 이미 우한폐렴 확진 환자가 10명을 돌파해 안심할수 없는 상황에서 기차역 안은 앞사람의 뒤통수가 코 앞에 바짝 붙을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누가 열이 있는지, 기침을 하는지 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출입구 앞은 몰려든 사람들을 지체되지 않게 통과시키는데에만 급급했다. 방역조치 강화로 바짝 긴장감이 높아져야 할 기차역 안은 춘제 연휴 고향을 찾는 사람들로 붐비는 예년의 기차역 풍경과 별반 다를바 없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우한폐렴 확진자 치료중인 병원 상황은?=우한폐렴 확진환자 여러 명이 격리돼 치료를 받고 있는 베이징 디탄병원 내부에도 긴장감은 없었다.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직원 A씨는 "오늘 아침에도 확진환자 2명을 직접 봤다. 그들의 상태는 꽤 괜찮아 보였다. 병원 안에 확진환자가 있기는 하지만 크게 공포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다. 굳이 달라진 점을 찾는다면 예전보다 병원 내부 소독이 빈번해진 정도"라고 말했다.
우한폐렴 확진 환자가 격리돼 있는 곳인 만큼 병원 앞 출입구에는 '37.5도 이상의 발열 환자는 일반 통로로 들어오지 말고 '감염병응급실'을 찾으라는 통지문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고열이 나도 일반 진료실로 쉽게 진입이 가능할만큼 발열환자를 통제할 수 있는 시설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우한폐렴 의심환자가 병원안을 쉽게 돌아다니며 면역력이 약한 다른 환자들과도 쉽게 접촉할 수 있는 구조였다.
발열 환자들만 모아놓은 '감염병응급실'을 찾았다. 감기 유행 시즌인 만큼 내부에는 50명 정도의 환자들이 가득했다. 빈 대기 의자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발디딜틈 없이 북적거렸다. 대부분이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일부 착용을 안한 사람들도 눈에 보였으며 병원측으로부터 별다른 제지를 받지도 않았다.
진료 후 병원을 빠져나오던 한 50대 여성은 "이곳이 우한폐렴 환자가 격리돼 치료를 받고 있는지도 몰랐다. 일반 시민들은 그런 정보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 그저 이 병원이 대형 병원인데다 감염병 치료에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어 왔는데, 얘기를 들으니 조금 불안해졌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소극적 대응도 문제=중국인들의 불감증은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면서도 정보와 언론을 통제해 전염병 불안감이 사회 전체로 퍼지는 것을 막는데만 급급하다.
춘제 시작 전에 일찌감치 겨울방학을 시작한 중국 학교들은 21일 저녁 각 반 학부모 단체채팅방에 가정별 개인위생에 신경써 달라는 내용의 통지문을 발송했다. 춘제 기간 이동이 많아 전염병 감염이 있을 수 있으니 손을 잘 씻고 마스크를 쓰며 야생동물과 접촉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우한폐렴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구체적 전염병명은 언급하지 않았다.
환자가 300명을 넘었지만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2일자 1면을 전염병 소식이 아닌 시진핑 중국 주석의 윈난성 방문과 춘제 축하 메시지로 채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보도는 4면으로 밀렸다.
우한 내 한국 교민들은 갑자기 급증한 확진 환자 통보에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우한 거주 교민은 "우한 내 병원에 감염환자가 갑자기 많이 늘어 간호인력이 부족하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주말 전까지만 해도 '괜찮다'였던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교민들이 너무나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위건위)에 따르면 22일 오전 8시26분(현지시간) 현재 중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환자는 후베이성 270명, 베이징시 10명, 광둥성 17명 등 총 324명에 달한다. 이들 지역 외에도 9개 성과 홍콩에서 100여명의 의심환자가 발생해 이날까지 총 확진자는 400여명에 달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베이징=박선미 특파원 psm82@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