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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70년 만에 끌어안은 아버지 유골함…제주4·3유해 신원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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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평화재단, 유해 12명 신원확인 보고회

귀엽다며 손에서 놓아주지 않았던 아버지

무릎에 앉혀 밥을 먹다 끌려나간 아버지

아버지 찾았단 전화에 울다 지친 유족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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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보자기에 싼 유골함을 끌어안았다. 참았던 눈물은 터져 통곡으로 퍼졌다.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까 이렇게 만날 수가 있구나.”

고영자(79·서귀포시 대정읍)씨는 70여년 만에 만난 아버지(고완행)의 유골함을 안고 한참을 통곡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4살 위 언니가 오래전 시댁의 안녕을 위해 닷새 동안 굿을 했다. 굿이 끝날 무렵 언니는 4·3 때 끌려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질치기(영혼을 평안하게 저승길로 보내는 의례) 날짜를 잡았다.

그날 밤, 동생 고영자씨의 꿈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아버지가 나타나 “옷 한벌을 해달라”고 했다. 자매는 “꿈에 아버지가 나타났다”며 옷을 만들어 굿을 하면서 태웠다. 30년도 훨씬 더 된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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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 유해 신원확인 보고회에 참석한 유족들은 곳곳에서 오열했다. 제주4·3평화재단은 제주공항에서 발굴된 4·3 희생자 유해를 대상으로 지난해 유전자 감식을 통해 행방불명 희생자 12명의 신원을 확인해 유족들에게 보고하고, 4·3평화공원 내 유해봉안관에 안치했다.

열흘 전, 고씨는 제주4·3평화재단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제주공항에서 발굴된 4·3 희생자 유해 가운데 아버지의 유해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깜짝 놀랐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몇번씩이나 ‘정말이냐’고 되물었어요. 전화를 끊고 혼자서 목메게 울다가 지쳤습니다.”

고씨는 “언니와 내가 어릴 때 아버지가 손에서 우리를 너무 귀여워해서 놓지 않으려고 했던 일이 잊히지 않는다”며 눈물을 훔쳤다. 고씨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직후 예비검속으로 제주공항에서 희생됐다.

1949년 군법회의로 희생된 아버지(현춘공)의 유해를 찾은 현영자(78·서귀포시 상효동)씨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토벌대의 방화로 집이 불타자 현씨의 가족들은 인근 친척 집으로 피신했다.

어느 날 아침, 당시 7살이던 현씨는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누군가 찾아와 아버지를 찾았고, 그 길로 아버지가 나갔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겨우 의자를 찾아 앉은 현씨는 ’아이고, 아버지’를 연신 부르며 “난 죽어도 원이 없다”며 통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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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군법회의에서 희생된 아버지(양지홍)를 찾은 양춘자(75·서귀포시 남원읍)씨는 “보름 전 제주4·3 평화재단에서 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고 너무 놀라 심장이 마구 뛰었다”고 말했다. “다른 곳에 가서 살아야 오래 산다”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아버지는 제주시 조천읍 신촌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 끌려가 희생됐다. 양씨는 학교를 방문해 아버지의 사진을 찾아 제사 때 사용한다.

양씨는 “제주공항에서 희생된 유족이 유해를 찾았다며 연락이 와 유전자 검사를 해 보라는 말에 검사해서 이번에 찾게 됐다. 너무 고맙다”고 울먹였다. 형(김영하)의 유해를 찾은 김영우(서귀포시 토평동)씨는 “1950년 예비검속 때 19살의 나이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형님 생각에 애통함을 금할 수 없다. 혈육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해 죄인 된 심정으로 70여년의 세월을 살아왔다. 그동안의 한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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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유해가 발굴된 제주4·3 희생자의 신원확인율이 33%에 이른다. 국방부의 신원확인율은 2%도 채 되지 않는다. 제주4·3 희생자들의 신원확인율은 국내에서 기록할만한 성과이다. 그러나 북부 예비검속 유족 등 여전히 유해를 찾지 못한 유족들이 많다”고 말했다. 송승문 제주4·3유족회장은 “70여년 동안 억울함과 원통함, 노여움을 가슴에 묻고 살아왔다. 정부는 그동안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제주4·3 희생자와 관련해 제주공항(2007~2009년)에서 387구 등 2006년부터 2018년까지 모두 405구의 유해가 발굴됐으며, 이번 확인된 12명의 희생자를 포함해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33명이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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