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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사설] 정부정책이 부른 ‘외상센터’ 갈등, 정부가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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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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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쪽과 갈등을 빚던 이국종 아주대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사임 의사를 밝힌 데 이어, 21일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열린 관계기관 회의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해 경기도 ‘24시간 닥터헬기’의 운항 재개가 당분간 불투명해졌다. 이번 사태는 정부의 권역외상센터 정책에 내재했던 문제가 표면화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런데도 정부의 ‘뒷짐’ 진 듯한 태도는 유감이다.

아주대병원과 이국종 교수 쪽은 그동안 외상센터 운영 방식, 의료진과 병상 배치, 헬기 문제 등을 둘러싸고 충돌해왔다. 병원이 정부의 간호사 증원 예산 일부를 기존 간호인력 비용으로 썼고, 센터 환자의 병상 사용도 금지했다는 이 교수의 주장에 대해, 병원 쪽은 법적 문제가 없다거나 병상 부족 및 적자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권역외상센터 환자 1인당 143만원의 적자가 발생한다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분석도 있다. 하지만 ‘골든타임’이 본연의 임무인 외상센터에서 환자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바이패스가 빈번하다는 건 어떤 이유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18년과 2019년 아주대 외상센터의 바이패스 건수는 각각 53차례와 63차례에 달했다.

이런 상황은 애초 설계를 잘못한 정책 탓이 크다. 2011년 이국종 교수가 석해균 선장 목숨을 살리며 국민적 관심을 모은 뒤 전국 6개 권역에 6천억원을 들여 외상센터를 지으려던 계획은, 예산 문제와 정치권 로비 등으로 전국 17개 시·도로 쪼개졌고 건립 예산도 한곳당 8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환자 상태에 따라 중증도를 나눠 등급별 센터를 두겠다는 구상 역시 무산됐다. 아무리 ‘지역 간 형평’이 중요하다지만 인구 900만명에 이르는 경기 남부와 인구 60만명의 제주도에 똑같은 규모의 센터를 두는 게 과연 효율적이고 타당한지 의문이다. 실제 아주대 센터는 가동률이 175%에 달하지만 다른 곳은 80%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아주대 외상센터의 바이패스 건수에서 보듯 예비병상 확보 등 병원이 준수해야 할 지침을 정부가 제대로 감독·관리해왔는지도 의구심이 든다.

이런데도 박능후 장관이 며칠 전 ‘아주대병원이 법·제도를 어긴 것은 없다’며 화해만 촉구한 건 무책임하다. 외상센터 체계에 대한 근본 점검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증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정부 정책이 야기한 문제는 정부가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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