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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여적]정어리떼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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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바다에 사는 곤(鯤)이라 불리는 물고기가 있다. 곤의 크기가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이 변하여 새가 되는데, 그 새는 붕(鵬)이라 부른다. 붕의 등도 몇 천 리인지 모른다. 붕새가 한번 힘써 날면 그 날개는 하늘을 뒤덮는 구름과 같다.’ <장자>는 ‘소요유’로 시작한다. 장주는 책 서두에서 거대 물고기 ‘곤’을 내세운다. 곤은 큰 바다를 헤엄치고, 곤이 변하여 된 붕새는 구만리장천을 비행한다. 곤과 붕새는 자유의 표상이다. 그런데 ‘곤’은 본래 큰 물고기가 아니다. <장자>에 앞서 나온 <이아(爾雅)>는 ‘곤’을 ‘물고기 알’(魚子)로 풀었다. ‘물고기 새끼’(魚苗·稚魚)로 정의한 문헌도 꽤 된다.

<장자>는 왜 새끼 물고기 ‘곤’을 거대 물고기로 둔갑시켰을까. 첫째는 장주 특유의 반어법이다. 그는 대소, 다과의 분별을 거부했다. 그에게 모든 사물은 평등하다. 크다고 우쭐댈 것도, 작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 곤과 붕새 다음 편에 하찮은 아지랑이와 티끌을 내세운 것도 마찬가지다. 둘째는 작은 물고기의 떼를 ‘곤’으로 보았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붕새 역시 한 마리의 큰 새가 아니라 무리 지어 나는 새떼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가창오리의 군무는 거대한 새 한 마리다.

대부분의 물고기는 떼지어 다닌다. 물고기의 절반 이상이 군집유영을 한다고 한다. 어류가 무리 지어 다니는 이유는 천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떼를 지어 다니면 먹힐 확률이 낮아진다. 또 먹이나 천적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어 번식과 생존에 유리하다. 물고기의 군집유영은 개체의 방어와 공격을 위한 최상의 생존법이다. 정어리는 군집유영을 하는 대표 어종이다. 항상 무리 지어 다니며 상어·고래 등 포식자로부터 서로의 안전을 지켜준다.

지난해 11월 이탈리아에서 처음 ‘정어리떼 시위’가 시작됐다. 시민들은 자신을 정어리에 비유하며 극우주의와 혐오정치로부터 이탈리아를 지키자면서 광장에 나섰다. 오는 26일 이탈리아 북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주말 시민들이 다시 ‘정어리 팻말’을 치켜들었다. 어찌 바다의 정어리떼뿐일까. 자본, 폭력, 혐오 등의 거대포식자는 항상 시민을 노린다. 깨어 있지 않으면 먹힌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정어리처럼.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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