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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조례를 찾아서](18)초미니 지자체서 피운 ‘효도조례’ 불씨…전국 농촌으로 옮겨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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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군의회 ‘봉양수당 조례’

경향신문

강원 양구군 문화복지센터 공연장에서 지난해 12월 17일 개최된 ‘어르신 건강체조 경연대회’에서 참가 어르신들이 체조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양구군은 2008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효도조례’로 불리는 조례를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양구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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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서 사회적 책임 일환

노부모 봉양 자녀 120여명 지원


행안부도 관심 보이며 권장 나서

도시 규모 작은 지역 중심 ‘주목’


“어르신들 살고 싶어 하는 고장이

곧 경쟁력 갖춘 도시의 출발선”


2008년 9월30일 7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초미니 지방의회인 강원 양구군의회에서 특별한 조례 한 건을 제정했다. 조례명은 ‘양구군 어르신 봉양수당 지급에 관한 조례’이다. 일명 ‘효도조례’다.

조례의 취지는 부모 봉양 가정을 지원함으로써 ‘경로효친’ 사상을 이어가고, 가족 화목에 보탬을 주기 위함이다. 출산율 저하와 평균 수명 연장으로 핵가족이 늘어나면서 ‘효’나 부모 부양 의무 같은 관습이나 개념이 변화하고 있는 시대 흐름이 고려된 조례이기도 했다. 만 80세 이상의 어르신 2명과 함께 거주하는 주민에게는 월 3만원, 어르신이 1명이면 2만원을 지원한다. 2인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1인당 월 1만원씩 추가된다. 매월 120여명에게 지원되는 예산은 약 250여만원이다.

이 조례는 가정 내 도덕적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부모 봉양 문제를 국가 행정기관의 제도적 영역에 포함시킨 최초의 사례다. 당시 ‘장수 수당’ 등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직접지원 조례는 일부 자치단체가 시행하고 있었지만, 노부모를 모시는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즉 ‘효도 자녀’에 대한 지원 조례나 정책은 없었다. 조례는 ‘효 조례’라는 별칭을 얻으며 도시 규모가 작은 전국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당시 행정안전부도 이 조례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례를 발의한 박승용 전 양구군의회 의원(61)은 “의회에서 조례를 제정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행안부로부터 ‘유사 조례가 전국에 확산될 수 있도록 정부가 권장하고 있다’고 전화로 알려왔었다”고 말했다.

양구군은 이 조례의 영향으로 ‘효 고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양구군은 봉양수당 외에 ‘홀로 어르신 친구만들기’ ‘찾아가는 건강체조교실’ ‘독거 어르신들을 위한 점심나누기’ ‘댄스·수공예교실’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조인묵 양구군 군수(62)는 “양구의 어르신들은 하실 일도 많고, 가실 곳도 많아 ‘바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며 “어르신들이 살고 싶어하시는 고장이 곧 경쟁력을 갖춘 도시의 출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구군의 봉양비 지원 조례 이후 ‘효도 자녀’에 대한 정부의 세금 혜택 제도가 잇따라 확대됐다. 올해부터 부모와 10년 이상 거주한 무주택자녀가 부모 집을 물려받았을 때 내는 상속세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정부는 상속증여세법 개정에 따라 부모와 자녀가 10년간 함께 거주했던 ‘동거주택의 상속공제율’은 주택가격의 80%에서 100%로, 공제한도는 5억원에서 6억원으로 상향조정했다. 이 지원 정책은 양구군 조례 제정 이듬해인 2009년에 첫 도입돼 계속 혜택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경향신문

강원 양구군의회가 국내 처음으로 부모 봉양 자녀를 위해 2008년 제정한 ‘어르신 봉양수당 지원 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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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동거봉양으로 인한 일시적 2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비과세를 확대하는 제도도 양구군 조례 제정 이후에 관련법이 개정됐다. 가족요양보호제도 도입으로 시설이 아닌 집에서 어르신이 자신의 배우자나 자녀 등 가족으로부터 ‘돌봄 서비스’를 받는 것도 가능해졌다.

한국은 1990년 민법이 개정된 이래 모든 자식의 상속분은 똑같지만 최근 법원에서는 ‘기여분’ 몫으로 부모를 봉양한 자녀의 상속분을 더 인정하는 판결도 잇따르고 있다. 이밖에 노인안전망 확충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주장과 민족 정서의 근간인 효 문화가 퇴색될 것이라는 의견이 여전히 팽팽하지만 ‘부모 봉양’을 법률안으로 가져오기 위한 국회의 움직임은 보다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현재 국회에는 정식 법안명은 다르지만 ‘부모공경법’, ‘불효자 먹튀 방지법’ 등으로 불리는 관련 법안이 여러 건 계류 중이다. 부모공경법은 말 그대로 부모에 대한 공경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법이다. 자유한국당 김성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은 노동자가 부모의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인한 돌봄뿐만 아니라 생일이나 부모가 함께하는 가족 모임도 고용주는 휴가 사유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게 골자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대표 발의한 ‘불효자 먹튀 방지법’은 민법 개정안으로 부모로부터 재산을 증여받고도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학대하면 증여받은 재산을 반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부양의무를 청구하거나 강화하는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양구군 조례는 부모 봉양을 ‘자식이 알아서 할 도리’로 국한하지 않고, 미국·독일·프랑스 등 일부 선진국처럼 국가가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의견을 가장 먼저 ‘법’에 담았다는 점에서 이 같은 변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견해가 많다.

한국은 초고령화 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19년 말 주민등록부 기준으로 사상 첫 800만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 대비 노인인구 비율은 15.5%이다. 국민 6명 중 1명은 노인인 셈이다. 이 추세라면 2025년에는 노인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고 노인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화 시대가 된다. 하지만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점점 감소하고 있어 ‘부모 봉양’에 대한 사회적 공동책임은 더욱 무거워질 전망이다.

◆“효도수당이 생활에 보탬 된다는 주민들의 말 들었을 때 보람 느껴”

2008년 전국 첫 ‘봉양수당 조례’ 발의한 박승용 전 양구군의원

경향신문

‘효도조례’로도 불리는 ‘양구군 어르신 봉양수당 지급에 관한 조례’를 발의한 박승용 전 군의원(61·사진)은 의정생활을 마치고 현재는 강원 양구군 남면에서 어르신 요양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일 요양원 1층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박 전 의원은 “일본 의정연수 당시 어르신 돌봄 관련 분야에 있는 일본의 한 관계자로부터 ‘한국이 일본보다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가 더 남아있는 게 부럽다’는 말을 듣고 이를 유지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보다 조례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박 전 의원은 “‘장수수당 등과 중복되는 조례다’라며 일부 군의원과 공무원들의 반대도 많았다”며 “당시 단체장과 의원·공무원들에게 일일이 의미를 설명하고서야 제 뜻이 전달됐다”고 전했다. 그는 “조례 제정 이후 청와대와 행정안전부에서도 ‘국가가 직접 추진하기에는 예산 등의 문제로 어려운 점이 있으니 군청에서 많은 홍보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양구군에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 전 의원은 “조례가 국가 정책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군민들이 ‘수당으로 부모님과 외식을 했다’ ‘자식에게 덜 미안하다’는 말을 저에게 건넸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저도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리움이 남들 못지않게 크다. 그래서 요양원 입구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경말씀을 써 놓았다”며 “미풍양속인 ‘효’가 퇴색되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며 안타까워했다.

박 전 의원은 “국가가 복지제도를 추진하는데 애로사항이 많겠지만 지나치게 대도시 중심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지방은 같은 복지제도에서도 구인난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고 강조했다.

한 예로 방문요양제도를 꼽았다. 그는 “서울 등 대도시는 돌봄 대상이 가까이 모여있어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케어하는 게 가능하지만 시골은 이동거리의 제한으로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어르신들이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정방문요양사에게 지급되는 시간당 수가가 도시와 농촌에서 차등 지원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상호 선임기자 sh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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