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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삼성 노조 와해 사건의 전말(3)]재판부 “경찰 정보라인 깊숙이 개입…‘윗선’은 기소 안돼” 갸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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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판결문으로 본 ‘염호석씨 시신 탈취 미스터리’

경향신문

2014년 6월30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염호석씨 영결식에서 동료 노동자들이 염씨를 추모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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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투입한 시신 탈취 현장

“노조원들 운구차 방해 안 해”

염씨 부친·브로커 ‘위증’ 판단


경찰청 정보국 ‘NPIS’ 이용

현장 상황 수시로 보고·지시


“정보경찰이 친기업적 행동

민주적 통제 방안 마련해야”

경찰청 진상조사위서 지적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정계선)는 ‘고 염호석씨 시신 탈취 사건’에서 삼성을 도운 대가로 1000만원을 받은 전 경남 양산경찰서 정보과장 하모씨(58), 전 양산서 정보계장 김모씨(62)에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선고로 삼성의 노조 와해 관련 사건 1심이 모두 마무리됐다.

‘삼성 노조 와해’ 관련 사건은 총 5개다.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사 노조 와해 사건, 삼성에버랜드의 노조 와해 사건, 정보경찰의 염호석씨 시신 탈취 사건, 고용노동부의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은폐 사건, 염호석씨 부친의 위증죄(재판에서 허위 증언을 한 죄) 사건이다. 1심 법원은 노동부 불법파견 은폐 사건을 제외한 4개 사건에서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 과정에서 경찰, 노동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들이 노조 와해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 활약이 두드러졌다. 경찰은 염호석씨 시신 탈취,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등 3개 사건에서 조력자로 등장한다. 22일 경향신문은 염호석씨 시신 탈취 사건을 중심으로, 경찰이 어떻게 삼성의 조력자로 움직였는지 살펴봤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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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을 위한 시신 운구 작전

삼성의 노조 탄압으로 2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천안협력사 노조 조합원 최종범씨(당시 33세)는 노조원만을 대상으로 한 ‘표적감사’를 견디지 못하고 2013년 10월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성이 단체교섭을 지연시키고, 노조가 설립된 협력사를 폐업시키는 등 노조 탄압 강도를 높이자, 양산협력사 노조 분회장 염호석씨(당시 34세)도 2014년 5월15일 “노조가 승리하는 날 나를 화장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떴다.

염씨 죽음을 계기로 노조가 강경투쟁을 벌일 것을 우려한 삼성은 염씨 장례를 ‘노조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바꾸려고 염씨 부친에게 합의금 6억여원을 주고, 노조원들 몰래 시신을 서울에서 부산까지 빼돌려 화장했다. 이 과정에서 수백여명의 경찰이 동원된 사건이 바로 ‘염호석씨 시신 탈취 사건’이다. 서울 장례식장에서 부산으로 시신이 탈취됐던 현장에 240여명의 경찰이 투입된 점 등은 ‘윗선’의 개입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염씨 부친을 회유할 수 있는 브로커 이모씨를 삼성에 소개하고, 장례식장에 경찰력이 투입될 수 있도록 이씨에게 허위 112 신고를 시키는 등 삼성에 적극적으로 편의를 제공하고 뒷돈을 받은 하씨와 김씨만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경찰의 개입을 두고 “삼성의 일방적인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행동”이라며 “직무상 부정한 행위”라고 결론지었다.

■ 장례방해 혐의로 체포된 노조원

5년 전 법원은 같은 사건에서 “경찰관의 정당한 직무집행”이라는 다른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2015년 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김한성 판사는 장례방해·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라두식 전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며 이같이 판단했다.

라 전 지회장은 2014년 5월18일 장례 절차를 노조에 위임한 염씨 부친이 가족장을 치르겠다며 시신을 부산으로 옮기려 하자, 서울의료원 강남분원 장례식장 앞에서 운구차 통행을 가로막은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라 전 지회장의 1심 판결문을 보면, 그는 재판에서 “염씨 부친의 112 신고만을 근거로 경찰력을 대거 투입해 조합원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한 것은 적법한 공무집행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①노조원들이 염씨 부친을 따라다니며 감시하자 염씨 부친 지인 이씨(브로커 이씨)가 ‘노조원에게 감금돼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수차례 112에 신고했다. ②염씨 부친이 시체 운구를 위해 부른 차량이 도착하자 노조원 수십명이 막아서면서 제지했다.③염씨 부친의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이 수십명의 노조원에 대해 운구차 통행로를 확보하기 위한 진압작전을 수행했다.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관계 중 일부다. 재판부는 “이 같은 사실관계를 비춰보면, 염씨 부친의 112 신고에 의해 경찰력이 투입돼 진압행위를 한 것은 범죄 예방과 진압에 관한 경찰관의 정당한 직무집행”이라고 했다. 2015년 10월 대법원은 이 판결을 확정했다. 같은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다른 노조원 수십여명도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 5년 만에 드러난 진실

진실은 5년 만에 드러났다. 라 전 지회장 재판에서 삼성 돈은 10원도 받지 않았고, 노조원들이 운구차 진입을 방해했다고 허위 증언했던 염씨 부친과 브로커 이씨는 지난해 9월6일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염호석씨 시신 탈취 사건’ 재판부는 정보과장 하씨의 지시로 정보계장 김씨가 브로커 이씨에게 112 신고를 시킨 것이라고 봤다.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삼성과 염씨 부친이) 합의가 돼서 사체를 들고 나와야 하니 112 신고를 해야 한다”는 하씨 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브로커 이씨의 112 신고 내용도 ‘허위’라고 봤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①브로커 이씨가 “300~400명의 노조원들이 운구차가 못 나가도록 방해하고 있다”고 신고를 할 당시 염씨 부친과 이씨는 장례식장 인근 추어탕집에 있었다. ②염씨 시신을 운구하기 위해 삼성전자서비스 측이 섭외한 운구차량이 들어가려 하자 장례식장 앞에 앉아 있던 노조원들은 길을 터주었다. ③신고 당시 염씨 시신은 운구차량에 실리지 않은 채 시신안치실에 있었다.


재판부는 “당시 상황에 대한 염씨 부친, 브로커 이씨의 증언이 위증으로 밝혀졌는바, 라두식 등 노조 관계자들의 재판 과정에서 현출되지 않은 증거들을 토대로 이 같은 사실이 새롭게 인정된다”며 “노조원들에 의한 시신 운구 방해가 실제로 있었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재심 청구나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할지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 “윗선 개입…아무도 기소 안돼”

“윗선은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염씨 시신 탈취 사건’ 재판부는 선고 공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판부는 “경찰청, 서울지방경찰청, 경남지방경찰청 등의 정보라인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브로커 이씨가 112 신고를 하기 전 서울의료원 장례식장 근처에 이미 경찰력이 포진해 있었던 점, 김모 전 경찰청 정보국 정보3과 노정팀장이 강남 르네상스 호텔에서 삼성이 염씨 부친에게 돈을 주며 합의하던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던 점 등을 보면 “하씨와 김씨가 독자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김 전 노정팀장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에서 피고인 32명 중 가장 높은 형량을 선고받은 그 정보경찰이다. 그는 노조와의 일명 ‘블라인드 교섭’에서 삼성의 요구사항을 전달한 대가로 뇌물 31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경찰청 정보국이 국가경찰정보시스템(NPIS)으로 ‘염호석씨 시신 탈취 사건’을 보고받았다는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NPIS는 정보경찰들이 상부로 정보보고를 할 때 쓰는 정보관리 프로그램이다. 재판부는 노조장을 위해 염씨 시신이 서울의료원 강남분원으로 출발하는 상황, 가족장을 위해 염씨 시신이 부산으로 운구되는 상황 등에 대한 정보상황보고가 경찰서→지방청→본청으로 이어지는 ‘정보라인’을 통해 전달됐다고 했다.

■ 경찰 “치안 부담 줄이려 개입”

검찰 조사를 받았던 이모 경찰청 정보국 정보3과장은 정당한 직무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집회·시위 양상이 계속 이어지다보니 치안 부담이 장기화돼 경찰 개입의 필요성이 있었다”고 했다. 하씨도 재판 과정에서 “치안수요가 빨리 감소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김 전 노정팀장은 최후진술에서 “임단협을 하며 쓴 술값, 택시비, 대리비 등을 실비 구제 차원에서 (삼성에) 요청한 것뿐”이라고 했다.

‘염호석씨 시신 탈취 사건’ 재판부는 “유족의 사적인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일 뿐만 아니라 노조의 이해관계는 배제한 채 삼성전자서비스 측의 일방적인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행동을 한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도 김 전 노정팀장에게 “피고인의 행위는 정보국 노사업무 담당 경찰관으로서 중립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고, 공무원으로서 청렴 의무를 근본적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 “민주적 통제 방안 마련해야”

박진 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은 “지역 경찰서 말단에서 상층부까지 아무런 죄의식 없이 기업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이라며 “이번 판결은 전체 정보경찰이 갖는 광범위한 문제점을 짚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홍석 전 경찰개혁위원회 정보경찰소위 위원(변호사)은 “경찰청 정보국이 치안활동 범위를 벗어난 부적절한 일들을 공적으로 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경찰청, 서울청, 경남청이 삼성에 유리한 방식으로 공권력을 집행한 것은 (삼성에서) 혜택을 받기 위한 것이지 결코 공익을 위해서 이런 결정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양 전 위원은 “경찰청 정보국은 폐지해야 한다”며 “경찰 업무라고 볼 수 없는 것들(정보수집)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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