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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도시는 현대사회 병폐 압축한 무대… 이제는 ‘공간 거버넌스’ 고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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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 전문가 집담회

17일 서울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려

‘도시의 지속가능성 높일 해법 찾기’ 머리 맞대

“시민들의 교류와 소통 늘리는 도시 공간 절실”

“정책 지원, 대학의 지역혁신 거점 역할 등 필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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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사회혁신기업 더함과 공동기획으로, 지난해 10 월부터 6차례에 걸쳐 지속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를 주제로 한 국내 전문가들의 글을 소개했다.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을 짚어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됐다 .

지난 17 일 오전 서울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는 그간 진행됐던 논의들을 정리하는 전문가 집담회가 열렸다. 김준호 사회혁신기업 더함 부대표가 사회를 맡은 이 날 행사는 경신원 도시와 커뮤니티 연구소장, 김정빈 서울시립대 교수, 남철관 나눔과미래 지역활성화국장, 백선희 육아정책연구소장, 김영철 사회혁신기업 더함 운영이사,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 조대연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스마트시티 사업단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기후위기와 소득 불평등은 이제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고민해야 할 과제가 된 지 오래다. 기후위기와 소득 불평등의 심각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은 바로 전 세계 인구 60% 이상이 거주하는 도시다. 개발도상국의 산업화 비율이 높아질수록 전 세계적으로 도시화율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앞으로 기후위기와 소득 불평등의 심각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엔도 일찌감치 도시의 중요성을 깨닫고, 2015년엔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중 하나로 지속가능한 도시 조성을 내세운 바 있다. 유럽 국가들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자연친화적이면서도 모든 시민에게 포용적인 도시 공간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해오고 있다. 구글, 아이비엠(IBM) 등 민간 기업들과 함께,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실험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전문가 집담회는 2020년을 맞아 우리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도시에 대한 논의와 노력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진지하게 살펴보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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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 전문가 집담회에 참여한 전문가 패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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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전문가들은 최근 대두하는 도시 문제는 경제, 사회복지, 행정제도 등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이 도시 공간 속에서 복합적으로 발현되는 현상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김영철 사회혁신기업 더함 이사는 “도시민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제반 조건인 삶터, 일터, 놀이터 중 하나라도 결핍될 때 도시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의 쇠퇴로 일터가 없어지면 사람들이 떠나가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생활비용이 비싸지면 사람들의 삶터가 도심 밖으로 내몰린다는 말이다. 김 이사는 “결핍되는 도시의 생활 제반 조건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나 민관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시별 경제·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정부 주도의 표준화된 도시 개발 정책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목소리도 나왔다.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는 “지자체의 도시 정책에 추구해야 할 도시 모델과 구체적인 목표를 담아야 한다”고 전제한 뒤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이 이상적인 도시 상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소득 불평등이 도시 내 주거지를 분류하고 나아가 폐쇄적인 도시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렸다. 남철관 나눔과미래 지역활성화 국장은 “자산의 가치로 공간이 분리되고 비슷한 자산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살게 되면서, 그렇지 못한 사람을 차단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며 우려한 뒤, “이러한 현상은 도시의 폐쇄성을 심화시키고,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역사회 거점된 ‘부평맑은샘어린이집’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이날 행사에선 민관이 함께 도시 건설과 운영에 참여해 도시의 활력을 불어넣는 ‘공간 거버넌스’의 중요성이 부각되기도 했다. 공간 거버넌스란 시민단체나 주민 커뮤니티, 기업 등 민간부문이 정부 혹은 지자체와 함께 도시 공간의 개발 계획부터 건설, 운영에 이르는 전 과정에 참여해 협력하는 것을 말한다. 집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공간 거버넌스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소통과 교류를 불러일으키는 도시 공간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조대연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스마트시티사업단장은 도시 공간의 경계가 시민들의 소통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조 단장은 “도시 속 삶터, 일터, 놀이터의 공간별 경계가 살아나야 사람들 간 상호작용도 활발해 질 수 있다”면서 “이 경계에서 도시의 문화와 정체성도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시설이 도시민들에게 소통의 공간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백선희 육아정책연구소장은 “도시 소외 지역에 공공시설이 들어서는 것만으로 지역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 인천시 청천동에 들어선 국공립 어린이집 사례를 소개했다. 부평맑은샘어린이집이 들어선 인천 부평구 청천2동은 제조업 공장들이 모여있는 남동공단 지역으로 노후주택들이 많아 주민들이 기피하는 지역 중 하나였다. 그러던 중 2016년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재원 지원으로 좋은 시설을 갖춘 어린이집이 설립된 후 인근에 도시형 주택들이 들어서며 변화가 시작됐다.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세대들이 이 지역으로 하나둘씩 이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평맑은샘어린이집은 주차장을 주민들에게 개방하는가 하면, 경계 없는 놀이터를 운영해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않는 아이들은 물론 동네 어른들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지역사회 거점 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영국 공공임대주택, 민간 파트너십 운영”

어디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참석자들은 공공시설을 비롯해 도시 속 소통 공간이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결국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북돋워 줄 제도나 정책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경신원 도시와 커뮤니티 연구소장은 “영국의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시공 초기부터 민간 조직이 파트너십으로 함께 참여해, 설립 이후 민간이 직접 임대주택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간 거버넌스를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김정빈 서울시립대 교수도 “도시의 활력을 가져오는 혁신 사례가 많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제도적 장벽 때문에 시도조차 안 되는 경우가 태반”이라면서 특정 지역이나 영역에 대한 규제 프리존 등 유연한 제도 도입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도시 혁신의 거점으로 대학이 제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조대연 단장은 “전 세계적으로 대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면서 “국내 대학도 이제 상아탑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현장에서 혁신의 거점이 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선결과제로는 지역균형발전의 관점에서 지역 거점 대학을 육성하는 민관 협력의 중요성이 유독 강조됐다.

글·사진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선임연구원 ek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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