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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편집국에서]설날 아침에 일어났으면 하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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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설 연휴 첫날 아침 칼럼이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봐도 도무지 ‘설’ ‘명절’이란 단어가 떠나지 않는다. 때가 주는 위압감에 꼼짝없이 갇혀 버렸다. 하지만 우리 명절엔 스토리가 없다.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엔 이야기들도 많은데. ‘설날은 까치인가…’라는 실없는 농담만 머릿속을 스쳐간다.

경향신문

그래서 물었다. ‘이번 설날 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냐’고. 상상으로라도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했다.

“숨겨둔 부모님 유산이 갑자기 발견됐으면…” 하는 예상 못한 농담에 당황하기도 했다. 그 정도는 돼야 ‘설날의 기적’인가. 장난스러운 이야기들이 주로 오갔지만, 마음에 가시처럼 걸리는 바람들도 있었다.

“혼자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 장소는 “휴양지”라고 했다. 여기서 핵심은 ‘혼자’다. 그는 30대 기혼 여성이다. 또 다른 20대 여성도 “아침에 눈을 떴는데 파리였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떠나고 싶다’에 스민 한숨의 무게가 묵직했다.

그래서 또 물었다. ‘명절’은 도대체 뭐냐고. “가부장제를 확인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과거엔 꼭 그렇지 않았다. “가족들, 사촌들과 모여 놀고, 배부른 날”이었다. 다만 그런 명절은 딱 “초등학교 때까지”였다.

“(친척들이) 참견만 덜해도 좋을 것 같다”는 데 이르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흩어졌던 친척·가족들이 모이는 게 더 이상 즐거운 이벤트가 아닌 게다. 오히려 가족이란 ‘관계의 부담’이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 ‘명절’인 셈이다. “결혼이란 권리를 반토막 내고 책임을 두 배로 하는 일”이라는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에 격하게 공감하는 이들이 급증하는 때일 것 같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나눠지지 않는 일, 그래서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는 부당함이 하나일 것이고, 불편한 이야기도 꾹 참고 들을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게 또 한 축일 것이다. 가족이란 포장으로 “걱정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서 ‘배려’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그저 ‘참견’으로 끝날 뿐이다. 혹 여기에 다른 누구와의 ‘비교’까지 더해지면 사정은 최악이 된다. 모든 가족의 따뜻함은 ‘걱정하는 것’과 ‘배려하는 것’의 균형이 필수적이다. 그러지 못할 때 만족감은 턱없이 낮아진다. 이쯤되면 명절은 거의 구조조정 대상이다.

과거 촌락공동체 시절 명절은 모처럼 “배부른 날”이었다. 절대연령 기준으로 할아버지 세대들의 이야기이고 증언이다. 그래서 앞세대들은 명절날 명절 음식 외에 돈 쓰는 것을 터부시한다. ‘옳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명절 떡을 먹어도,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은 게다. 그들 다음 세대는 그만큼 다양화된 시간을 살고 있다.

그다음 세대, 즉 핵가족 1세대는 가까운 친척과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즐겁고, 드물게 덜 쓸쓸한 날이었다. 명절 연휴 끝 무렵 다시 떠나는 ‘삼촌’이나 사촌들을 보며 먹먹했던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들 세대의 명절 의미는 그래서 ‘만남’이었다.

그에 비해 지금 젊은 세대는 ‘관계의 다이어트’가 일상화된 시절을 산다. 핵가족에 더없이 익숙해지고, 그런 삶의 양식에 지나치리만치 적응하고 진화했다. 가족의 만남만으로 의미와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가족이든 친척이든 ‘관계’는 그들에게 즐거움보다 부담이 되기 싶다고 느낀다.

모두 ‘책임·부담’은 크게 느끼는 반면 명절의 ‘만족감·권리’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명절의 주도권을 쥔 ‘어른’, 앞세대조차 예전에 비하면 변해버린 시대에 어리둥절해하며 ‘시차’를 겪는다. 그들이 앞세대에게 줬을 것이라 믿는 만족감을 돌려받을 길이 없기에 ‘억울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이런 살아온 시간과 시대에 대한 감각의 차이는 실상 ‘완전 해소’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배려하는 것’은 더 중요해진다.

이번 설은 모두가 음식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즐거움을 나누는 명절이면 좋겠다. 관계가 다이어트를 해야 할 만큼 무겁지 않은 그런 날들이면 좋겠다. 아내에게, 남편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온전히 하루쯤 ‘연휴 속 휴가’를 주고받는 것은 어떨까. 걱정과 배려가 균형 있게 만나는, 아니 걱정보다는 배려가 더 깊은 그런 ‘설날 아침’이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제일 겁나는 질문을 했다. 아내에게 물었다. “설날 아침에 뭔 일이…”. 돌아온 답은 예상밖이었다. 심드렁하게 “별로”였다. “별로 기대하는 게 없어”라는 거였다. ‘상상으로라도…’라고 캐물었지만 “상상도 별로 안되는데…”라고 했다. 애고고.

김광호 기획에디터 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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