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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아카데미 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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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봉준호 감독(가운데)과 배우 이정은(왼쪽)·송강호씨가 지난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 베벌리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백스테이지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 UPI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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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화제다. <기생충>이 한국 영화사를 거의 매일 경신하고 있다. 2019년 5월 황금종려상도 한국 영화사상 처음이었다. 올 1월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더니, 이번에는 아카데미 영화상 6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미국배우조합에서 주는 작품상 격인 앙상블상도 수상했다. 후보가 된 것도 처음인데 수상도 한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골든글로브 등 이름만 겨우 알았던 미국의 영화상이 연일 한국의 뉴스에 오른다. 칸, 골든글로브, 배우조합, 아카데미에서 거듭 한국어 수상소감이 전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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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벌써 아카데미가 뭔데 이렇게 호들갑이냐는 목소리가 들린다. <기생충>이 뭐 그렇게 대단한 작품이냐는 의구심이나 비아냥도 커졌다. 우선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이 영화사적으로 위대한 작품의 인증마크일까? 이를테면, 2018년 아카데미 작품상은 <그린북>이 가져갔는데, 이 작품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보다 훌륭한 것일까? 영화적 완성도만 따지면 답이 쉽지만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플랫폼 문제도 질문에 섞여 있으니 어렵다.

한편 2012년 65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는 같은 해 아카데미에서 외국어영화상만 수상했다. 그 해 아카데미 작품상은 배우로도 유명한 벤 애플렉 감독의 <아르고>가 가져갔다. 그렇다면 <아르고>가 <아무르>보다 더 훌륭한 작품일까? 적어도 내겐 <아무르>가 훨씬 더 훌륭하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화니와 알렉산더>나 <안토니아스 라인>과 같은 작품은 영화교과서에도 실릴 정도이지만 같은 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애정의 조건>이나 <브레이브 하트>는 화제작 정도로 기억된다. 아카데미가 절대 인증은 아니란 뜻이다.

그런데 왜 <기생충>의 아카데미 입성과 수상 가능성에 이토록 주목할까?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나 수상소감 등을 통해 이 관심의 정체를 조금은 파악할 수 있다. 우선 아카데미는 영어 중심 작품들이 나눠 가져왔다. 조건 자체가 미국에서의 7일 이상 연속 상영인데 그나마 국제장편부문, 즉 외국어영화상만 3회 이상 상영으로 사정을 좀 봐줬다. 미국 개봉 영화는 영어 영화를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막영화는 소위 젠체하는 엘리트들이나 선택하는 특별한 체험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이런 불모지에 봉준호의 <기생충>이 단숨에 착륙했다. 중국 영화는 1990년 제5세대 감독 장예모의 <국두>가 처음 외국어영화상 후보가 된 이후 <패왕별희>나 <영웅> 같은 작품들을 후보에 올렸으나 2000년에야 <와호장룡>으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미 <와호장룡>의 이안 감독은 <센스 앤 센서빌리티>나 <아이스 스톰> 등으로 미국 제작 현장에 들어선 감독이었다. 미국 영화의 구조를 잘 알고 있던 이안 감독이 전통적 중국의 색으로 미국 시장과 평단을 공략한 작품이 바로 <와호장룡>인 셈이다.

아카데미는 시상식 당일에 한정된 일회적 행사가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뉴스 가치를 갖는, 준비된 문화현상이자 상품이다. 그 과정 자체가 잘 짜인 각본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이며 상업적 기획과 소비의 플롯을 갖추고 있다.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는 비건 햄버거가 제공되었고, 배우조합상 시상식엔 특정 샴페인과 물이 제공됐다. 구체적 상호는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다. 아카데미 홈페이지에서는 아카데미 굿즈도 판다. 아카데미상은 미국식 영화 시스템의 상징이자 압축적 장면인 셈이다. 이 복잡다단한 아카데미, 미국 영화의 장벽을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한 작품으로, 단숨에, 일거에 뚫어버렸다.

무엇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아카데미의 구조이다. 아카데미는 철저히 영화인들이 주체가 되는 영화상이다. 제작자, 배우, 작가 등 영화 현장의 구성원들이 투표하고 결정한다. 방송국은 송출 권한만 있을 뿐 투표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반면, 우리나라 주요 영화상은 거의 다 특정 언론사에 속해 있다. 조선일보사가 청룡영화상을, 중앙일보사가 백상예술대상을 주관한다. 한국 영화인들이 주인이 되어야 마땅한 대종상은 그 시작부터 관제 영화제였지만 이제는 영화인들의 외면을 받는 이상한 영화인 영화상이 되어버렸다. 아카데미의 권위와 높은 인기, 그 출발은 바로 영화인들의 손을 거친 영화인들의 시상식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회원제의 밑바탕에는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조합, 길드가 자리 잡고 있다. 아카데미에서 정말 부러운 것은 든든한 조합과 표준계약이 버티고 있는 미국 영화계의 구조이다. 미국 영화인조합의 구조와 권위가 더 절실하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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