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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굴, 지금이 진짜 꿀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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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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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께 살짝 팁을 드리자면 지금이 진짜 굴 철이다. 굴은 지금부터 맛있다. 찬바람 불면 맛있다 했으니 11월이 아니었어? 아니다. 11월의 바람은 차지만 바닷물은 미지근하다. 개인적으로 1월과 2월의 굴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굴은 대개 1년생으로 출하한다. 겨울을 처음으로 넘기게 된다. 앗, 추워. 겨울을 맛본 굴은 영양을 더 몸 안에 응축한다. 그러면서 11월보다는 더 성숙한다. 1월의 굴은 종종 더 진한 빛깔을 띤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이다. 1월과 2월의 굴은 농익어서 향도 맛도 진하다. 굴을 잔뜩 사들여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젓 담그는 일이다. 천일염 넉넉하게 쳐서 짜게 담그면 경상도 내륙식 굴젓(구젓)이 된다. 굴이 삭도록 두었다가 입맛 없는 여름에 북어포, 고춧가루에 버무려 밥반찬 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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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리굴젓도 맛있다. 어리굴젓의 속뜻은 어린 굴(잔 굴)이거나 얼얼한 매운 굴이라는 뜻이 있지만, 얼른 버무려 먹는다는 뜻도 된다. 집에서 간단히 하자면 굴 무게의 3%쯤 소금을 살짝 치고는 고운 고춧가루 슬슬 섞어서 냉장했다가 먹으면 꿀맛이다. 굴 주산지인 통영에서는 우연히도 굴을 ‘꿀’이라고 발음한다. 굴에 소금 대신 액젓을 쳐도 맛있다. 까나리든, 멸치든, 참치든 액젓이면 다 맛있다. 요즘 꽁치액젓도 나오는데, 그걸 섞어도 좋겠다. 1주일쯤 냉장했다가 마늘, 파에 무쳐서 뜨거운 밥에 얹어 먹으면 기막히다. 요즘은 월동 무가 맛있을 때다. 굴깍두기나 굴 생채도 좋겠고, 밥을 지어도 맛있다. 솥밥을 오랜만에 지어보자. 무를 채 썰고 쌀과 섞어 안친 후 불 끄기 5분 전에 굴을 밥 위에 얹는다. 양념장을 만들어서 썩썩 비비면 된다. 무 굴밥은 굴이 나오는 많은 지역에서 해먹었는데, 별미로 먹기도 했지만 부족한 쌀을 메우는 쓸모이기도 했다.

굴은 산지마다 다양한 식생이 있고, 그 굴을 캐는 인간의 노력이 다 다르다. 서해안의 굴을 흔히 잔 굴이니 석화니 하여 다르게 부르는데 덕적도처럼 여러 섬들의 굴을 알아줬다. 서해안은 보통 갯벌 바위에서 붙어 자라는데, 그걸 일일이 ‘조새’라고 부르는 도구를 써서 캐야 한다. 그 수고가 만만치 않고, 오랜 기간 캔다 해도 워낙 굴이 작아서 양이 얼마 안된다. 대신 굴의 향이 알싸하고 감칠맛이 도드라진다. 인천 사람들은 흔히 겨울에는 잔 굴을 먹었다. 알이 자잘해서 잔 굴인 이 굴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젓가락 대신 숟가락을 쓰는 것이다. 푹 퍼서 초간장을 숟가락 등에 찍어서 한입 그득 먹는다. 하여튼, 진짜 굴 철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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