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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박혔던 돌’이냐 ‘굴러온 돌’이냐…영·중, 아프리카 주도권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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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보완할 잠재력 주목한 영국

위축되는 글로벌 경제입지 활로

빠른 성장 옛 식민지 대륙서 모색

“향후 2년간 20억 파운드 투자”

인프라 깔아주며 ‘안마당’ 만든 중국

30년간 외교장관 매년 첫 방문

민족해방 고난 동병상련 강조

아프리카 최대무역상대국 올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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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이후 과거 식민지 경영을 하던 아프리카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노력을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뿌리를 내린 중국의 세력이 만만찮다.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뜨거운 대륙’ 아프리카의 주도권을 놓고 옛 종주국 영국과 ‘굴러온 돌’ 중국의 대결이 눈길을 끌고 있다.

■ 왕의 귀환, 영국-아프리카 정상회의

영국은 지난 20일 런던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가나의 나나 아쿠포아도 대통령, 이집트의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 등 아프리카 16개국 정상이 참석한 가운데 영국-아프리카 투자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정상회의에 참석한 존슨 영국 총리는 영국이 아프리카의 투자 파트너가 되기를 원한다면서 “아프리카는 미래이며 영국은 그 미래를 위해 거대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로크 샤르마 영국 국제개발부 장관은 정상회의 종결연설에서 “영국 정부 소유의 개발금융기관(CDC)이 아프리카에 대한 3억파운드(약 46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에 동의했다”며 “향후 2년 동안 20억파운드를 더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더 타임스>는 18일 이와 관련해 “영국 정부가 대아프리카 전략을 강화하기 시작했다”며 “이를 위해 런던 금융시장의 강점을 활용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영국이 아프리카에 다시 눈을 돌리는 것은 검은 대륙의 잠재력을 재평가했다는 뜻이다. 현재 12억 인구의 아프리카는 60%의 인구가 25살 미만일 정도로 젊은 인구층이 많고 최근 빠른 성장을 보인다. 특히 동아프리카는 2010~2018년 연평균 6%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샤르마 장관도 이날 연설에서 “여러 아프리카 국가가 최근 수십년 동안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을 능가하는 등 아프리카의 투자 잠재력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2050년까지 전세계 4대 소비자 중 1명이 아프리카인이 될 것”이라며 “아프리카는 영국의 글로벌 경제 입지를 유지할 큰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6년 브렉시트 탈퇴를 위한 국민투표 가결이 영국의 ‘아프리카 회귀’를 재촉했다.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우간다, 케냐 등 옛 식민국가들과의 경제협력 확대와 외교 관계 개선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수출 시장을 확보하고 중국, 프랑스 등 다른 강대국들이 아프리카 국가들과 밀착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레어 전 총리는 “2014~2018년 사이 아프리카에 대한 영국의 직접투자는 약 170억달러로 중국의 720억달러, 미국의 310억달러 등보다 훨씬 낮았는데 이는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브렉시트로 인한 유럽대륙과의 분리를 아프리카와의 글로벌 네트워크로 보완하려는 영국의 이런 정책을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신 식민주의’라고 꼬집기도 한다.

■ 30년 동안 매년 중국 외교부장 첫 방문지는 아프리카

영국의 아프리카 ‘귀환 노력’이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이미 아프리카는 중국의 ‘안마당’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번 영국-아프리카 투자 정상회의에는 아프리카에서 불과 16개국 정상만이 참석했지만 2018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에는 전 아프리카 54개국 중 53개국의 정상이 참여했다. 아프리카 유일의 대만 수교국인 에스와티니만 제외됐다.

중국이 아프리카와 첫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을 열었던 2000년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불과 50억달러어치의 상품을 수입했다. 당시 영국은 130억달러어치를 수입했다. 하지만 19년이 흐른 지난해 중국의 대아프리카 무역액은 2천억달러를 넘어 11년째 아프리카의 최대 무역상대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2억달러를 투자해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아프리카 연합 건물을 지어줬다. 지금은 1억4천만달러를 들여 짐바브웨의 새 국회의사당을 짓고 있다.

접근 방식도 다르다. 영국은 아프리카에 투자한 금액의 51%를 자원 채굴 등에, 34%를 금융서비스에 투입했다. 여전히 아프리카에서 자원을 개발해 가져오고 공산품을 내다 파는 식민시대 방식의 무역을 했던 셈이다.

이에 비해 중국 외교부 장관들은 지난 30년간 매년 해외 첫 방문지로 아프리카를 찾으면서 논리적으로는 ‘동등한 주권국’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올해도 첫 방문지로 아프리카를 택해 지난 7~13일 이집트, 부룬디, 짐바브웨 등을 방문했다. 왕 외교부장은 지난 12일 짐바브웨 하라레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중국과 아프리카는 독립과 민족 해방에서 고난을 함께한 남북협력의 모델”이라며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일방주의가 만연한 국제관계 속에 중국과 아프리카는 국제연대 및 공동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공동의 요구가 있다”며, 미국과 유럽을 견제하기 위한 아프리카와의 ‘전략적 연대 필요성’도 숨기지 않았다.

실제 왕 외교부장은 중국의 확장 정책인 ‘일대일로'의 성과와 필요성도 강조했다. 2018년 개통한 동아프리카를 관통하는 몸바사~나이로비 철도(489㎞)를 비롯해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건설한 철도와 도로가 각각 6천㎞를 넘어섰고 130여개 의료시설과 45개 체육관, 170여개 학교를 지어줬다고 홍보했다. 토목 분야를 넘어 동아프리카 각국을 연결하는 해저 광케이블을 건설하고, 23개국의 통신망을 설치하는 등 디지털 실크로드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이 발행할 디지털 화폐의 시범 도입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아프리카를 방문한 마윈 알리바바 그룹 전 회장은 “오늘의 아프리카는 20년 전의 중국”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에 대해 유럽과 미국은 아프리카가 중국이 놓은 ‘채무의 덫’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부패한 정부를 활용해 일대일로 사업 등으로 큰 부채를 짊어지도록 한 다음 아프리카 국가들의 내정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를 서방의 ‘의도적 비난’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온라인 매체 <쿼츠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의 비전은 50억달러 가치의 코코아 시장을 1천억달러 규모의 초콜릿 시장으로 바꾸는, 중국을 계승해 세계의 차세대 제조업 중심지가 되는 것”이라며 “영국이 아프리카의 개발 파트너가 되기를 원한다면 중국처럼 아프리카의 새로운 미래에 적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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