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모 산업2부 기자 |
“이 정보로 공시가격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산정됐는지 파악할 수 있는 주택 소유자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23일 국내 한 대형 감정평가법인 소속 감정평가사의 말이다. 이날부터 국토교통부와 한국감정원은 부동산 공시가격 알리미 사이트를 통해 표준 단독주택 22만 채의 2020년도 공시가격을 공개했다. 올해부터는 세종시의 표준 단독주택 934채는 산정 근거인 기초자료도 함께 공개했다. 국토부는 “공시가격의 신뢰성 향상을 위한 시범사업”이라고 기초자료 공개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기초자료의 정보가 부실하고, 산정 이유마저 두루뭉술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무슨 근거로 공시가격을 산정했냐”는 불만이 거세다.
국토부가 공개한 세종시 고운동의 한 단독주택 기초자료에는 공시가격-주택특성자료-가격참고자료-산정의견 등의 정보가 담겼다. 이 주택의 공시가격은 지난해 4억7800만 원에서 올해 4억8800만 원으로 2%가량 올랐다. 주택과 건물 특성을 간략히 소개한 뒤 “위치 및 주위 환경, 도로 및 교통 여건, 형상 및 지세, 공법상 제한, 건물 구조, 시공 정도, 노후도, 면적 등 가격 형성 요인과 거래 관행, 인근 유사 주택의 가격 수준 및 거래 가격, 시세반영률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해 산정하였음”이라고 산정 의견이 적혀 있다.
기자가 23일 공시가격 알리미 사이트에서 세종시 표준 단독주택 10여 채의 공시가격과 기초자료를 확인했더니 모두 똑같이 “종합적으로 참작”이라는 산정 의견이 적혀 있었다. 한 감정평가사는 “부동산 감정의 근거가 되는 접근·환경 조건 등 요인치(기준) 등의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평가의 적정성을 따지기 어렵다”며 “정보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다”고 혹평했다.
공시가격의 객관성이 중요한 이유는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등 각종 세금뿐 아니라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수급 등 60여 개 행정·복지 분야의 기준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급격한 공시가격 인상을 단행하면서 신뢰성에 의문을 갖는 시민들이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 성동구 갤러리아포레 아파트는 지난해 230채 전 가구의 공시가격이 통째로 수정되는 등 공시가격은 신뢰성에 타격을 입었다.
2018년 1290건에 불과했던 공동주택 공시가격 의견제출 건수가 지난해에는 2만8735건으로 껑충 뛰자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공시가격 신뢰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세종시의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 기초자료 공개도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방안 중 하나다. 세간에서는 공시가격의 현실화율만 높아지고 신뢰성은 높아지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온다. 면피성 정책이 아니라 공시가격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한 것이 맞다면 국토부는 공시가격 산정 근거 공개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유원모 산업2부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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