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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아재여, 그 ’라떼’는 드시지 마세요…설 명절 꼰대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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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란 말을 남긴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은 현대 사회를 ‘먼저 안 게 오류가 되는 시대’로 규정했다. “농경사회에서는 나이 먹을수록 지혜로워지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혜보다는 노욕의 덩어리가 될 염려가 더 크다”며 “지금은 경험이 다 고정관념이고 경험이 다 클린 시대”라고 말했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친척 어른들의 조언 아닌 조언에 시달려야 하는 설 명절을 앞두고 읽어보면, 완전 ‘ㅇㄱㄹㅇ ㅂㅂㅂㄱ ㅇㅈ?(이거레알 반박불가 인정?)’이 절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띵언(명언)’이다.

올해도 빨간날은 ‘라떼’를 마셔야만 지나간다. 그래도 실망하지 마라. 설날은 ‘돈블레스유’(세뱃돈 때문에 참는다)가 있으니까. 그런데 혹시 지금 ‘라떼’가 뭐지, 했는가? (어서와, 자네 이런 기사는 처음인가) 이런, 돈스파이크 삼겹살 ‘먹방’ 못 본 현생이시여.

‘라떼는 말이야’는 자꾸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문장을 구사해 ‘정서적 피해(emotional injury)’를 입히는 꼰대어를 말한다. 영어로 직역하면 ‘Latte is horse’(사전엔 없다)로 쓰고, ‘나일리지(나이+마일리지, 나이를 권력으로 안다) 쩐다’고 이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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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떼는 말이야’ 기초편-네? 저 상암이 옛날엔 다 난지도였다고요?

어느 지역을 지나던 아는 척을 하고 싶다면 ‘이영자 맛집’이나 알려주면 좋다. 근데 꼭 ‘라떼’를 타드시는 ‘아재’들이 있다. 예컨대, 서울 상암동이라고 치자. ‘천재’를 ‘천하의 재수 없는 놈’의 줄임말이라며 유년기를 낄낄거린 1960년대생 아재들은 “여기가 예전에는 난지도라고 다 쓰레기 산이었다. 진짜 세상 좋아졌지. 니들은 그런 것 모르지?”라며 4월이면 꽃분홍 진달래 앞에서 등산복 입고 단체 사진 찍는 것 같은 티엠아이(TMI: Too Much Information) ‘갬성(감성)’에 흠뻑 젖는다. 엄마 몰래 피시(PC)통신에 접속해 입장 순으로 ‘완장질’을 해대며 아무한테나 ‘어솨요, 방가’를 연발하는 오지랖 훈련을 받은 1970년대생 어떤 아재들은 상암동에만 오면 조건반사 자극을 받는지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를 읊조리곤 “근데 2002년도에는 너는 몇 살이었냐”를 확인하곤 한다.(그렇게 말씀하시면 기부니(기분)가 조은가요?) 전혀, 당황할 필요 없다. 이런 엄카(엄마카드) 들고 와 허세부리는 것 같은 순정한 ‘라떼’ 공격은 정공법이면 충분하다.





“당숙, 지금 전국이 쓰레기 산으로 앓고 있습니다. 전국에 불법 폐기물로 쌓아 올려진 쓰레기산의 규모는 확인된 것만 140만 톤이 넘습니다. 대한민국은 플라스틱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플라스틱은 지구적으로 기후 위기와도 관계되어 있습니다. 지금 지구 전체가 난지도인 것은 아닐까요? 혹시 기후 위기에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라거나

“삼촌, 대표적인 2002년 키즈인 기성용과 구자철도 축구대표팀에서 은퇴했는데, 지금도 FC서울의 스트라이커가 박주영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대형 스트라이커가 부재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요?”

와 같은. 아마 그 아재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닫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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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라떼는 말이야’ 심화편-취업해야지? 애는 낳을 거지?

명절 아침, 탄수화물 범벅 아침 밥상이 그렇지 않아도 더부룩한데 꼭 정형화된 패턴으로 ‘고구마 100개 먹자’(물 없이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하게 군다는 뜻)고 달려드는 답답한 친척 어르신들이 있다. 그들의 특징은 짧은 질문을 던져 매우 효과적으로 속을 후벼 판다는 점이다. 답이 뻔히 정해져 있는 ‘답정너’ 꼰대질이다. ‘답정너’ 질문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취업해야지, 애는 낳을 거지, 둘째 낳아야지, 공부 열심히 하고 있지, 대학 가야지, 누구 딸 ○○은 올해 ○○됐다더라,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이런 말을 하는 인류가 계속 확대 재생산되니 ‘곰방대’에서 꼰대가 유래됐다는 ‘받은 글’이 힘을 잃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안타깝지만 상대가 나의 약점을 이미 파악하고 정해진 답을 향해 파고드는 맞춤형 ‘라떼’ 공격을 시전하면, 맞서서 제압하기는 쉽지 않다. 이럴 땐 슬쩍 피하거나 빠르고 과하게 지지(GG·Good Game, 항복을 의미)를 쳐야 한다. 저항하지 말고 ‘흑우(호구)’가 된 듯 라떼향에 젖어든 척….





-취업해야지?

“쉽지 않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저 같은 자손이 왜 나와 가지고. 다음 명절에도 또 그 질문을 하시겠지만, 저의 마음은 이미 패배하였습니다. 청년 취업률이 매해 사상 최저치입니다. 저 같은 미물은 미생이 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7급 공무원 문제지나 폐지로 만들다가 끝날 인생인데 오늘도 무슨 염치로 배는 자꾸 고파지고 떡국을 먹고… 저는 이제 그만 문제지나 폐지를 만들러 가겠습니다. 혹시 근데 문제집 사려고 하는데 지갑에 남는 ‘문상(문화상품권)’ 같은 건 없으시죠?”

-애는 낳을 거지?

“네, 너무 낳고 싶습니다. 애를 하나 키우려면 3억원이 든다는데, 육아가 전쟁이라 한 명은 직업 전선에서 후퇴해야 한다고 하지만 꼭 낳고 싶습니다. 집 한 채 물려받은 게 없어 학자금 대출 갚자마자 전세 자금 대출 갚고 있지만 낳고 싶습니다. 또 빚내면 되지요 뭐. 물론 저는 지금도 점심을 편의점에서 먹습니다만, 자식은 낳아야지요. 제가 취업을 한 건지 아직 편의점 알바생인지 혼돈스럽습니다. 애를 낳을 자격 같은 게 있다면, 저는 물론 안 되겠죠. 그런데 그런 게 없으니 꼭 낳겠습니다. 스트레스가 불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지만 사랑으로 이겨내야죠. 저희 부부는 이제 그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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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라떼는 말이야’ 응용편-‘라떼인 듯 라떼 아닌 라떼 같은’ 말들

자신이 갖고 있는 ‘틀’을 세상의 질서나 정의 혹은 순리로 여기며 짐짓 관심 있는 척 다가와 ‘라떼인 듯 라떼 아닌 라떼 같은’ 말들을 하는 유형들이다. 적절해 보이는 걱정과 내심을 숨긴 유도 심문이 좋은 ‘초부(초밥뷔페)’의 밥알과 생선살처럼 밸런스를 이루는 경우에는 꼰대어인지 아닌지조차 혼미한 경우가 종종 있다. ‘멘탈’이 눈송이처럼 녹아내리지 않도록 가장 잘 다잡아야 하는 경우다. 대표적으로는 현직 공무원인 이모부나 고모 같은 친척이 있다면 ‘내상 크리’를 크게 입을 가능성이 크다. “아직도 공무원 시험 준비하니, 내가 잘 알잖니. 근데 그만큼 했으면 이제 다른 것 준비하면 어떨까도 싶은데…”와 같이 어택하는 경우다. 거칠게 들어올 때는 그냥 ‘내가 왕년에, 내가 너 나이였을 때는’과 같은 식으로 앞줄을 생략하고 시작하기도 한다. 이런 ‘진지국 끓이는 소리’에는 드립력을 발휘해 재빨리 ‘정색’ 국면에서 탈출해야 한다. 드립이라는 말 자체가 원래 라틴어 ‘아드 리비툼’, 자유롭다는 뜻이다.





“이모부, 저도 공무원 시험 그만두고 싶습니다. 그럼 선출직에 도전해야 할까요?”

“고모, LG트윈스 팬이시죠? 왕년에 신바람 야구 대단했다던데. 마지막 우승했을 때 최고 인기곡이 김건모 ‘핑계’ 맞죠.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그 얘기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성세대는 늘 지금 세대가 어제의 우리와는 너무 다르다고 말해왔다. <90년생이 온다>를 쓴 임홍택은 ‘살아본 적 없는 미래의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시간 속의 이주민’일 뿐이라고 했다. 먼저 왔다고 뻐기지 마라, 살아본 적 없는 시간은 조만간 올 것이고, 누구보다 ‘라떼’를 많이 들이킨 당신에게 절대 불리할 것이니까.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 모든 잔소리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겠지만 명절 하루 잔소리가 없어진들, 세상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번 명절 단 하루라도 ‘잔소리 없는 날’을 선언해보자. 그리고 함께 웃자, ’읏짜~’.

*참고 서적

<90년생이 온다> 임홍택 지음, whale books

<잔소리 없는 날> 안네마리 노르덴, 보물창고

♣️H6s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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