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5 (일)

韓 독자파병하는 호르무즈…美·이란 40년 충돌한 `긴장의 해협`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부가 독자 작전 형태로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결정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21일 아덴만에서 우리 선박 호송임무를 수행해온 청해부대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 일대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호위연합체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호르무즈 항행안전에 국제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란은 미국 주도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경고 메시지를 내보내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로 글로벌 원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졌지만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운운하면서 전 세계를 위협해 왔다. 너비가 불과 50㎞에 불과한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아라비아반도 사이에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좁은 수역이다. 가장 폭이 좁은 곳은 39㎞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3분의 1을 담당하는 요충지로 페르시아만에 인접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원유나 천연가스를 싣고 아라비아해나 인도양에 나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이다. 특히 국내에 수입되는 원유의 70%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

이 때문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행동에 옮긴다면 3차 오일쇼크가 올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상황까지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작년 6월 호르무즈 해협에서 일본 선사가 피격당할 당시 일시적으로 이 구간을 지나는 선박 보험료가 폭등한 것을 감안하면 보험료 추가 부담 등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중요성은 10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는 해상 무역을 기반으로 한 호르무즈 왕국이 10세기에 건립됐다. 당시 호르무즈섬이 왕국의 중심지였다. 해협 동북쪽 호르무즈섬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해상무역의 발달로 '세계가 금반지라면 이곳은 반지에 박힌 보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했다.

13세기 마르코 폴로의 저서인 동방견문록에서는 '향신료와 보석, 진주, 비단, 직물, 상아 등을 거래하는 인도 상인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고 기록돼 있다. 대항해 시대를 연 포르투갈의 함대가 1515년 호르무즈를 공격하고 지배하에 두는 데 성공했다. 이후 100년 동안 이곳을 점령하면서 포르투갈은 중국, 말라카와의 무역을 독점하며 부를 축적했다. 이후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들도 이 해협에 진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민지 경제에 의존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저물었다. 아울러 배의 건조기술과 엔진의 발전으로 중간 기착지의 도움 없이 직접 교역이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호르무즈 해협의 중요성이 잊힐 뻔한 순간이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중동 국가들이 주요 산유국이 되면서 이곳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더욱 빛을 발휘하게 됐다. 거래 대상이 석유로 변했을 뿐 호르무즈 해협의 가치는 여전히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갈등이 시작되던 시기였던 2018년 7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란이 역사적으로 수로(호르무즈 해협)의 보호자였다"면서 '사자의 꼬리를 갖고 장난치지 말라, 후회할 것'이라는 페르시아 격언을 인용해 미국에 경고하기도 했다.

[김덕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