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로 MIT교수 저서 '금융시장으로 간 진화론'…"우리의 목표가 금융을 좌우하도록 해야"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금융 시스템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생태계의 일종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소재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앤드류 로 경영대학원 교수의 관점은 독특하다. '효율적인 시장가설'이라는 주류 이론과 전혀 다른 관점에서 금융시장을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을 토대로 금융시장의 비밀에 대해 풀어가는 흥미로운 접근법이다. 금융시장은 정말 생존 차원에서 경쟁하고 거듭 재생산되며 환경에 적응해나아가는 살아 있는 유기체의 특성을 지니고 있을까. '금융시장으로 간 진화론'은 그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다. 금융시장을 둘러싼 발상의 전환에 전문가들의 시선이 끌렸다.
금융시장으로 간 진화론이 미국출판협회 경제·경영 최우수 도서, 블룸버그 최우수 도서, 미국출판협회 사회과학 최우수 도서, 월스트리트저널(WSJ) 비즈니스 리더의 책으로 선정된 것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기존 사고의 틀로부터 벗어나려는 로 교수의 시도를 전문가 집단이 높이 평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코스피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 공포 확산 여파로 전 거래일 대비 53.92포인트(2.4%) 내린 2192.22로 거래를 시작한 28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 대비 9.8원 오른 1178.5원으로 거래를 시작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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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적 시장가설은 금융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생물학적 사고방식이 훨씬 더 유용하다고 전제한다. 시장가격은 공포와 탐욕 같은 감정적 반응에 의해 합리적 수준을 이탈할 수 있다는 시각이 적응적 시장가설의 바탕이다. 이 책은 550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에 심리학·진화생물학·신경과학·인공지능(AI)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을 담았다.
"적응적 시장가설은 인간의 비합리성과 합리성을 모두 포함하며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의 과정에서 두 가지 유형의 행동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로 교수의 이 주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경제학자들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일정 수준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수익은 얻을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겼다. 개인의 위험회피 정도는 서로 다르다. 국채에만 투자하는 보수 성향의 투자자가 있고 한 종목에 수조 원을 베팅하는 헤지펀드 매니저도 있다.
로 교수는 "효율적 시장가설에서 소비자는 합리성을 바탕으로 수학적으로 최적의 소비를 행한다"면서 "적응적 시장가설에서 소비자의 선택은 과거 진화의 역사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개인의 합리성은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만 작동한다는 게 적응적 시장가설의 뼈대다. 로 교수는 "경제학자들은 합리적 행동에 기반한 고도의 수학적 이론들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 적용했다"면서 "(하지만) 인간 행동의 제한된 합리성을 설명하는 데 생물학이 수리물리학 이론들보다 훨씬 더 유용하다"고 주장했다.
적응적 시장가설은 효율적 시장가설을 대체할 대안 가운데 하나다. 이론적인 발전 과정을 놓고 볼 때 아직은 초기 단계에 있고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다만 주류의 관점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문제를 푸는 데 한몫한다는 점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로 교수의 진단은 흥미롭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과도한 인센티브 지급이 금융위기를 부른 원인이라는 진단도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대중이 믿고 싶어하는 결론일 뿐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적응적 시장가설의 관점에서 보면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은 공포를 압도한 탐욕이었다. … 시장에 참여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포를 야기하는 (뇌의) '편도체'보다 탐욕에 사로잡히게 하는 '측좌핵'을 더 활성화시켰다."
2008년 금융위기는 경제 시스템을 흔든 특정 집단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로 교수는 "과잉의 시대에서 이득을 본 사람은 누구였을까. 정답은 모두"라며 "금융기관, 정치가들, 건설업자들, 미디어, 미국의 거의 모든 국민이 주택버블로 이득을 봤다. 모두가 이 버블이 지속되기를 원했다"고 꼬집었다.
20년 가까이 심각한 경기 후퇴 없이 안정적인 상황이 지속되자 사람들은 잠재된 리스크를 과소평가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는 사람들의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라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라는 게 로 교수의 시각이다.
그렇다면 2008년 금융위기를 방지할 방법은 없었을까. 로 교수는 "시스템 내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변화에 늘 주목해야 한다"면서 "규제 당국 자신도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잠재적인 문제를 확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로 교수의 독특한 진단은 의외의 장밋빛 청사진과 맞닿아 있다. 적응적 시장가설을 토대로 한 금융시장은 암과 빈곤, 에너지 같은 인류 사회의 고민도 20년 안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150개 신약 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하면 하나당 평균 2억달러, 필요 자금은 300억달러에 달한다. 150개 프로젝트 중 최소 3개 이상이 성공할 확률은 98%이다. … 하나의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평균 123억달러의 가치를 창출한다. 98%의 확률로 10년 뒤 약 370억달러(123억달러×3)를 손에 쥐게 된다."
이런 시나리오로 신약 개발과 관련된 금융상품만 만들 수 있다면 암 같은 난치성 질환을 해결하고 막대한 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 금융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따라 '제로섬 게임'이 아닌 인류 구원을 위한 '구세주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로 교수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로 책을 마무리했다. "투자 수익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처한 지독한 문제를 해결하는 충분한 자금을 모을 수가 없다. 금융이 우리의 목표를 좌우하게 하지 말고 우리의 목표가 금융을 좌우하도록 해야 한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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