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헌정 대한수면의학회 이사장
10여 년 전 세상에 등장한 스마트폰이 인류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 안, 심지어 길을 걸으면서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진 사람과 마주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포노사피엔스’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스마트폰은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어 스마트폰 없이 지내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스마트폰이 인류에 기여한 바는 크지만, 삶에 긍정적인 변화만 일으키는 건 아니다. 과도한 스마트폰의 사용은 건강에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수면 의학과 기분 안정 측면에서 일으키는 문제점에 주목할 만하다.
인류의 역사에서 많은 사람이 밝은 광원을 바로 눈앞에서 계속 쳐다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TV나 컴퓨터 모니터도 빛을 발하지만 스마트폰에 비하면 눈에서 상대적으로 멀리서 노출되기 때문에 그 문제가 심각하진 않았다.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빛의 세기는 낮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심야에는 신체 기능에 영향을 미칠 만큼 충분히 밝은 빛의 세기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스마트폰을 바라보면 동공이 확장돼 뇌로 전달되는 빛의 양이 평소보다 더 과도해진다.
잠자리에서 스마트폰을 장시간 보는 상황은 생체리듬을 흩뜨리고 충분한 잠을 자는 데 방해가 된다. 심야에 눈을 통해 밝은 빛이 뇌로 전달되면 뇌의 시상하부의 ‘시신경교차상핵(SCN)’이라는 부위에서 우리 몸의 일주기 리듬을 뒤로 밀리게 하고, 뇌의 송과체에서 멜라토닌이라는 수면 유도 호르몬 분비가 억제돼 잠들기가 어려워지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지게 된다. 이러한 빛의 영향은 빛이 밝을수록, 파란색을 띨수록 더욱 커진다. 게다가 최근 연구에서는 야간에 빛에 의해 일주기 생체리듬이 뒤로 밀리고 잠을 방해하는 나쁜 영향이 성인보다는 아동과 청소년기에 훨씬 더 심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생각 없이 심야에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빛이 정상적인 수면의 질과 일주기 리듬을 깨뜨려서 불면증, 늦잠과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빛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최근 일몰 시간 이후에는 저절로 파란색 파장의 빛을 줄이는 앱이 개발돼 사용할 수 있다. 수년 전부터는 스마트폰 제조사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지해 파란색 빛을 차단하는 기능을 스마트폰에 처음부터 포함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심야에는 약한 빛이라도 생체리듬을 뒤로 밀리게 하고 불면증과 아침의 무기력감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침실에 들어가서는 스마트폰 사용을 하지 않는 것이 불면증과 우울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회적으로도 스마트폰뿐 아니라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야간의 과도한 빛 노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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