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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유엔,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 관련 기업 112곳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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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권사무소, ‘불법 정착촌’ 활동 기업 보고서

“전례 없는 임무 심사숙고…사법 절차 아냐” 강조

“점령지 주민 권리에 영향”…대부분 이스라엘 기업

익스피디아·모토로라·알스톰 등 외국 다국적 기업도

팔레스타인 “국제법 승리”…이스라엘 “유엔이 공모자·시종 돼” 비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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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 사업에 관여한 기업 112곳의 명단을 발표했다.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자 잠재적인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영토로, 이곳의 점령과 정착촌 건설은 국제법상 불법이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이 12일 공개한 보고서의 목적과 성격은 공식 명칭에 잘 드러나 있다. 제목이 ‘이스라엘 정착촌이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점령지 주민들의 시민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한 독립적인 국제 실태 조사 임무와 관련한, 정착촌 활동에 관여한 모든 기업들의 데이터베이스’이다.

보고서가 명시한 기업의 대다수(94곳)는 이스라엘 기업들이며, 외국의 다국적 기업은 6개국 18개 업체였다. 그중엔 숙박 공유업체 에어비앤비와 온라인 여행업체 익스피디아, 트립 어드바이저(이상 미국), 부킹닷컴(네덜란드), 모토롤라 솔루션(미국·이스라엘), 고속열차 테제베(TGV) 제작업체인 알스톰(프랑스) 등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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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이번 보고서의 작성과 발표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이 문제가 매우 논쟁적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며 “보고서는 광범위하고 세심한 검토를 거쳤으며, 전례 없고 매우 복잡한 임무에 대한 심사숙고를 반영한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등 외신들이 전했다. 판무관실 대변인도 “기업 명단은 블랙리스트가 아니며, 기업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유엔 보고서는 특히 “명시된 기업들에 대한 언급이 사법적, 준사법적 절차는 아니며 그러지도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정착촌은 국제법상 불법이지만, 이 보고서가 문제의 기업 활동이나 관련 기업들에 대한 법적 규정을 제공하지는 않는다”며 “위임과 관련한 어떤 추가 조처도 오는 24일 시작되는 유엔 인권이사회 회원국들이 다룰 사안”이라고 명시했다. 이번 보고서가 유엔 인권이사회의 정식 안건으로 다뤄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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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보고서는 2016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서안지구의 정착촌 관련 기업들에 대한 조사 결의안을 채택하고 인권고등판무관실에 조사 및 데이터베이스 작성을 위임한 데 따른 것이다. 현재 서안지구에는 약 140곳의 정착촌에 60만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마을들은 거대한 분리장벽으로 둘러싸인 채 곳곳에 외딴섬처럼 고립돼 ‘하늘만 열린 감옥’으로 불린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 서안 지구를 점령한 뒤 꾸준히 정착촌을 확대하면서 새로운 분쟁의 씨앗을 뿌려 왔다. 이스라엘의 최대 맹방인 미국은 정착촌에 대해 최근 몇 년 새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점령지 내 정착촌 건설을 강하게 비판하고 중단을 요구해 이스라엘과 심각한 갈등을 빚어왔다. 그러나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른바 ‘중동 평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정착촌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해, 팔레스타인 쪽의 강한 반발과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았다.

이날 유엔 보고서 공개에 대한 당사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모하메드 쉬타예 총리는 “열거된 기업들은 유엔 결의안에 위배되는 불법 정착촌 내 본사와 지사를 즉각 폐쇄하라”며 “불법 점령지 사용에 대한 보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전했다. 리야드 말리키 외무장관은 “보고서 발간은 국제법의 승리”라며 “유엔 인권이사회가 해당 기업들의 정착촌 관련 활동을 즉각 중단하도록 권고와 지침을 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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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강하게 반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12일 트위터에 “누구든 우리를 보이콧하는 자들은 보이콧 당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경멸스러운 행위를 강력히 거부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스라엘 카츠 외교장관은 “유엔 인권이사회가 이스라엘 보이콧 운동의 공모자이자 시종이 됐다”고 비난하며 “편파적인 반이스라엘 정책을 거부하며 그 이행을 막는 데 모든 수단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예루살렘 포스트>가 보도했다.

한편, 유엔 보고서는 이번 조사에서 정착촌 관련 기업들을 선정한 기준과 정의, 과정도 비교적 자세히 밝혔다.

첫째, ‘비즈니스 기업’은 서안 지구 정착촌에서 기업 활동을 한 모든 모회사 및 자회사, 프랜차이즈, 지역 주재 회사(지사), 협력업체, 관련 사업자들을 망라했다. 둘째, ‘정착촌 관련’은 열거된 활동 중 한 가지 이상과 명백하고 직접적으로 관련된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기업 활동으로 정의했다.

셋째, ‘열거된 활동’은 유엔 인권이사회의 데이터베이스 작성 결의안에 따른 ‘팩트 파인딩 미션’(실태 조사 임무)에 명시된 활동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정착촌 건설지에서 아랍인 주택과 시설물의 철거 또는 파괴와 관련된 장비, 서비스, 자재의 공급과 사용 △정착촌 건설지에서 기업의 목적을 위한 자연자원 사용, 특히 팔레스타인 내 점령지에서 물과 토지의 사용과 그에 따른 상업적 이득 활동이 뼈대를 이룬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은 조사 기간인 2017년 9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11개월 동안 조사 대상에 오른 모든 기업과 사업체와 직접 접촉했으며, 인권 및 다국적 기업 문제에 대한 실무그룹의 자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초기 조사에서 206개 기업체를 선정한 뒤 그중 188개 기업을 추려 추가 분석 작업을 했으며, 이들 기업 모두에 공문을 보내 조사 취지를 설명하고 60일 이내 답변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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