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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송동훈의 세계 문명 기행] [46] 아테네 민주주의 절정기 30년… 세계적 유산 파르테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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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클레스와 아크로폴리스]

민주파의 리더 페리클레스 - 보수적 자영농 중심 정치와 대립

모든 시민이 권력 행사하도록 민회·법정 참석하면 수당 지급

민주화되자 민중의 잠재력 발산 - 소수가 권력 쥔 폴리스들과 달리

시민들 수준 상향 평준화돼 자발적으로 공동체에 기여

아크로폴리스가 생생한 증거 - 아테네 복원, 미래 전망 제시

최고의 예술가들이 참여해 파르테논 등 혁신적 건축 완성

조선일보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그리스 문명의 정수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이다. 그들과 함께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바깥 세계와 성스러운 언덕을 이어주는 웅장한 프로필라이온(Propylaeon)을 지나면 바로 아크로폴리스다. 예상외로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파르테논 신전과 에레크테이온(Erechtheion), 니케의 신전만이 단출해서 아쉽다. 아직까지 제자리를 찾지 못한 대리석 조각들은 바닥에 놓여 언제가 될지 모를 재건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 순간이 오기는 할까? 사람들은 무심히 대리석들을 지나 아크로폴리스의 중앙을 향한다. 이 공간에서 가장 유명하고 거대한 파르테논 신전을 향해서! 그러나 파르테논마저도 막상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면 실망할 수 있다. 뼈대만 남아 있다. 신전 내외는 보수공사를 위한 기계장치로 덮여 있다. 허무함을 견디며 요기조기를 살펴보다 보면, 이토록 허물어지고 파괴됐지만 묘하게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이 불완전함에 2400년이 넘는 시간의 흐름과 상상력을 더하면 어떻게 될까? 1세기의 위대한 저술가 플루타르코스가 표현했던 그 아크로폴리스를, 그 파르테논을 만나게 될 것이다.

"각각의 건축물은 완성된 순간 이미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이제 막 완성됐을 때와 같은 활력을 뿜어낸다. 그리하여 건축물들에는 영원한 싱그러움이 꽃피어 마치 시들지 않는 젊음과 나이를 모르는 활력을 들이마신 듯 세월을 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과 활력! 플루타르코스는 아크로폴리스의 본질을 제대로 짚었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탠다면 '속도'다. 이 위대한 공간은 여러 세대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올린 것이 아니다. 대부분 한 시대에, 그것도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되고 완성됐다. 그의 이름은 페리클레스. 그가 리더로 있을 때 아테네 민주정은 절정에 도달했다. 아테네 제국은 에게해를 지배했다. 아테네 문명은 불멸의 영광을 얻었다. 그 증거로 페리클레스의 아테네는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을 남겼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때의 아테네는 어떤 공동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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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와 그 위의 당당한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뿐 아니라 그리스 문명의 금자탑으로 오늘날까지 명성을 떨치고 있다. 페리클레스는 페르시아에 의해 파괴된 아크로폴리스를 새롭게 재건해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높은 이상과 탁월한 가치를 아테네 시민들에게, 더 나아가서는 미래의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그의 계획은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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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민주주의의 리더

페리클레스(Pericles·기원전 495~429년)는 페르시아 전쟁 영웅 크산티푸스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아테네 최고의 명문 귀족인 알크마이온 가문의 일원으로 아테네에 민주정을 도입한 클레이스테네스의 조카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민주파의 리더로 성장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이 끝난 이후의 아테네는 마라톤 전투의 승전 장군 밀티아데스의 아들 키몬이 이끌었다. 키몬은 해군으로 바다에서 페르시아와 싸우자는 테미스토클레스의 전략에 찬성했고, 살라미스 해전에서 누구보다 용맹하게 싸웠던 애국자였지만 기본적으로 보수파였다. 비록 아테네의 미래는 바다에 있지만, 보수적인 자영 농민이 사회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키몬은 생각했다. 페리클레스는 그렇지 않았다. 노잡이를 비롯한 모든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공무(公務)에 참여하고, 전적으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페리클레스는 민회와 법정에 참석하는 모든 시민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이로써 아테네에서는 가난한 사람들도 생업에 대한 걱정 없이 적극적으로 공동체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페리클레스가 행한 여러 민주주의 개혁 조치는 대다수 민중에게 잠재돼 있던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아테네는 더욱 과감하게 바다로 나아갔고, 바다를 지배하는 제국의 길로 나아갔다. 스파르타를 비롯한 그리스의 다른 폴리스들이 과두제를 엄격하게 유지함으로써 내부의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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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회가 열리는 프닉스 언덕에서 페리클레스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재건된 아크로폴리스를 가리키며 연설하는 상상화. 그는 시민들에게 스스로의 업적에 자부심을 갖고, 연인을 대하듯 아테네를 사랑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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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클레스가 계획하고 진행하고 완성

아테네 시민들은 무절제한 열정과 죽 끓는 변덕으로 유명했다. 그들의 위대한 리더들은 순식간에 버림받거나 쫓겨나거나 잊혀야 했다. 페리클레스만은 예외적으로 30년이란 세월 동안 변함없이 그들로부터 지지받았다. 전쟁도 평화도, 파괴도 재건도 페리클레스는 선택할 수 있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스스로 높은 전망을 제시하고, 그것을 충족시킴으로써 모두의 모범이 됐기 때문이다. 페리클레스는 민주주의를 이끌어 갈 지도자의 덕목으로 통찰력, 설득력, 애국심, 청렴의 네 가지를 꼽았다. 자신이 정한 덕목을 달성하기 위해 페리클레스는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의 존재는 덩달아 아테네의 민회를 탁월하게 만들었다. 비전 없이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단견(短見), 실체 없는 감언이설, 애국심으로 포장된 사익 추구, 청렴한 척하면서 뒤로는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위선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런 페리클레스가 처음부터 계획하고 진행하고 완성한 것이 새로운 아크로폴리스였다. 이를 위해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그리스 세계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페르시아, 스파르타와 평화를 맺도록 설득했다. 평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재건은 페르시아와의 오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하는 것 이상이어야 했다. 과거의 아테네를 복원하는 동시에 새로운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야 했다. 파르테논을 비롯한 우리가 알고, 아직도 찾아오는 아크로폴리스는 그런 원대한 목적하에서 재건되기 시작했다. 전설적인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총감독을 맡았고,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최고의 예술가들이 모두 동원됐다. 특히 길이 70m, 너비 30m에 이르는 파르테논 신전은 건물 곳곳에 미묘한 굴곡을 가함으로써 인간의 눈에는 완벽한 직선 건물인 듯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혁신적인 건물로 지어졌다. 모든 작업이 끝났을 때 민주주의와 제국을 양대 축으로 한 아테네는 페리클레스의 생각대로 그리스 문명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생생한 기념비가 됐다.

필멸의 인간으로 불멸의 영광을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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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는 그렇게 업적을 남겼다. 그들의 성취는 장차 알렉산더의 정복로를 따라 헬레니즘이란 이름으로 멀리 인도까지 전해질 터였다. 로마제국을 사로잡아 유럽 문명의 토대가 될 터였다. 단지 페리클레스를 비롯한 몇몇 리더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했다. 아테네의 수많은 사람이 함께 피와 땀을 흘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로. 2400년도 더 전에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자유로운 사회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국가와 사회에 물어볼 수 있다. 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지, 왜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기여해야 하는지. 페리클레스는 여기에 답을 내놓았다.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행복이, 행복을 위해서는 자유가, 자유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데, 오직 자유롭고 민주적인 공동체 아테네만이 그 모든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그 안에서 자유로운 시민들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자신의 탁월함을 추구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서 불멸의 영광을 얻게 된다고 페리클레스는 얘기했다. 경쟁, 탁월함, 불멸의 영광이라는 가치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안에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같은 영웅이 추구하던 것이었다. 페리클레스는 소수의 영웅에게만 가능하다 여겼던 그리스의 전통적인 가치를 민주 사회의 자유로운 시민 모두에게 개방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이 민주주의에 퍼부었던 비난, 즉 민주주의는 모든 것을 하향 평준화시킨다는 생각을 단호하게 거부한 것이다. 페리클레스에게 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을 상향 평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재건된 아크로폴리스는 그 생생한 증거였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탁월한 왕이 계속 배출되지 않는 것처럼, 민주주의 지도자도 연이어 훌륭한 사람이 등장하기는 쉽지 않다. 페리클레스를 잃은 다음 날부터 아테네 민주주의는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파르테논 신전과 아크로폴리스를 수많은 사람에 치이며 급하게 구경하고 끝내는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노을이 질 무렵 아크로폴리스 건너편 필리포스 언덕을 오른다. 언덕 곳곳에는 극소수의 사람이 아크로폴리스의 야경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의 가치는 충분하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펼쳐지고, 그 속에서 페리클레스가 아테네 시민들과 함께 추구했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그들은 필멸의 인간으로 태어나 불멸의 영광을 추구했던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로운 인간으로. 2400년도 더 전의 일이란 게 놀랍다.

[뼈대만 남은 건축물… 조각상 등 내용물은 아크로폴리스 뮤지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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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소장된 에레크테이온의 여성상 열주 진품.


아크로폴리스에서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이 현대식 박물관은 아크로폴리스에서 출품된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품이 구성돼 있다. 유물의 수준은 아테네국립고고학박물관 다음으로 높다. 에레크테이온을 떠받치고 있는 여신상 형태의 열주 진품과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들이 압권이다. 특히 파르테논 신전을 장식했던 대리석 조각들은 신전과 똑같은 크기의 전시실에 전시돼 있어서 당시의 화려하고 웅장했던 파르테논 신전을 상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대영박물관에 전시 중인 엘긴 대리석(Elgin Marbles)이라 불리는 파르테논 조각들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아테네가 제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동맹국들과 맺은 각종 조약을 새겨놓은 표지판들도 인상적이다.

[아테네=송동훈 문명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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