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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Citylife 제717호 (20.02.25)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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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의 성자가 고백록을 쓰기까지 『아우구스티누스』

시티라이프

로빈 레인 폭스 지음/ 박선령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고백록』의 전반부. 곡의 움직임이 고백함을 바탕에 깔고 회심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면, 후반부는 회심, 더 정확히 말해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회심이 아닌 그가 타인들을 회심시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실제로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 세계에 살았던 사람 가운데 가장 많은 정보가 남겨진 이 중 하나다. 로빈 레인 폭스는 397년 9월까지 쓴 글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모든 것을 읽고 이 책을 집필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위대한 회심’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기원 후 4세기 말, 40대 초반의 한 남자가 신에게 바치는 내밀한 기도문을 쓰기 시작했다. 글의 절반인 과거의 자신이 저지른 죄악과 실수를 되돌아보는 내용이다. 소년 시절에 했던 도둑질, 자신의 훌륭한 어머니, 내연녀, 금지된 종교 집단에 소속되었던 경험, 성에 탐닉한 일, 세속적 욕망을 털어놨다. ‘창세기’에 담긴 창조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적 의미를 찾아내고, 때로는 영원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때로는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논했다. 현대 철학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고 있는 총 13권의 책을 쓴 뒤 그는 신의 선함을 찬미하고 장차 천국에서 안식을 얻고자 하는 인간들의 희망을 표현하면서 끝을 맺었다. 이것이 바로 전무후무한 작품으로 알려진 『고백록』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 로마 총독이 관할하던 아프리카의 한 지방(지금의 알제리)에서 토속 신앙을 믿는 아버지와 그리스도교도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그가 살았던 시절은 찬란한 로마문화가 붕괴하기 시작한 혼돈의 시기였다. 북아프리카 시골 청년이 성인이 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30세 이전에는 신을 잘 알지 못했다. 그의 청년 시절은 수사학과 마니교, 신플라톤주의 연구에 몰두한 욕망과 탐욕적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삶에 대한 뜨거운 열망과 지식과 믿음에의 추구가 위대한 사상가의 삶으로 이끌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개종한 뒤 10여 년이 지나 『고백록』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는 갑작스러운 관점의 변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10년 동안 묵상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고백록』이 특별한 책이 된 이유로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 철학을 접한 것을 꼽는다.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철학자의 표현을 따라 성서를 해석했다는 것. 마치 호메로스가 1000년이 넘게 구술 시인들이 구전해준 표현을 이용해 글을 썼듯이, 그 또한 성서 구절들을 재료로 삼아 옷을 짜듯이 하나의 긴 기도문을 작성했고, 결국 가장 위대한 구술된 라틴어 산문이 되었다. 역사 소설처럼 밀도 있는 기록을 통해 1600년 전 한 인물의 삶을 다각도로 들여다보는 책이다.

▶뉴욕의 북디자이너, 내 인생의 책을 말하다 『기억과 기록 사이』

시티라이프

이창재 지음/ 돌베개 펴냄


대학에서 우연히 들은 미술사 수업이 의대생을 꿈꾸던 영문학도의 삶을 바꿨다.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 잰슨의 『서양미술사』 등을 강독하는 수업을 듣고 무언가에 홀린 듯 미술사로 전공을 바꿨고, 실기 수업까지 듣고 회화 전공학위까지 받았다.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디자인 석사를 받고 북디자이너가 된 저자의 삶을 이끈 건 이처럼 한 권의 책이었다.

컬럼비아대학출판부 25년 차 북디자이너인 저자가 읽은 책과 만든 책에 관한 에세이다. 중학교를 마친 뒤 미국 시애틀로 이주한 뒤에도, 모국어를 잃지 않은 이민자의 글에는 책에 대한 동경과 헌사가 가득 담겼다. 컬럼비아대학출판부는 올 6월이면 창립 127년이 되는 유서 깊은 출판사다. 대학에 소속된 미국의 다른 모든 대학출판부와는 다르게, 2016년까지 123년 동안 대학으로부터 재정적으로 독립해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디자이너로 그는 매년 24~30권, 지금까지 600여 권의 책을 디자인했다. 보람 있는 기억 중 하나는 2000년대 하버드대 데이비드 맥캔 교수의 편집으로 한국 시인 34명의 시를 소개한 『한국 현대 시 컬럼비아 앤솔로지』와 브루스 풀턴과 권영민 교수의 책임편집으로 『현대 한국문학 단편 선집』을 만든 것. 출판부에서 처음으로 펴낸 한국 현대문학 단행본인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도 그의 손끝에서 재탄생했다. 그는 책에서 “북디자인은 디자이너가 예술을 하기 위한 매개체가 아니라, 책이 지닌 고유한 사유의 세계로 불특정 독자를 안내하는 전문적인 일”이라고 설명한다. 글의 맥락을 시각화해내는 일종의 번역과 같은 작업이라는 뜻이다.

[글 김슬기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17호 (20.02.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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