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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봉준호 “영화 자체가 기억되길”…금의환향 ‘기생충’ 주역들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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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 두려워하면 안 돼”…한국영화 산업에 ‘일침’ /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봉 감독에 “조금만 쉬고 일하라” 편지 / 송강호 “지난 6개월은 타인들의 위대함 알아 가는 과정” 회고

세계일보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한데 모인 영화 ‘기생충’ 주역들. 맨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배우 이선균, 장혜진, 박소담, 제작사 바른손E&A 곽신애 대표, 배우 조여정, 이정은, 박명훈, 이하준 미술감독, 한진원 작가, 봉준호 감독, 배우 송강호, 양진모 편집감독. 연합뉴스


“행복한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아 기쁩니다. 경사다 보니 영화사적 사건처럼 기억될 수밖에 없겠지만 영화 자체가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촬영 기간보다 긴 할리우드 시상식 일정을 소화하고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을 차지한 채 금의환향한 봉준호 감독은 19일 ‘기생충’으로는 마지막 공식 석상에서 이 같은 바람을 드러내며 “(영화 창작이란) 길을 뚜벅뚜벅 걸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봉 감독을 비롯한 ‘기생충’ 제작진과 배우들은 이날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뜨거운 성원을 보내 준 국민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

봉 감독은 “전 세계 동시대의 많은 관객이 호응해 준 게 가장 기뻤다”고 돌아보며 “왜 호응을 해줬는지에 대해서는 시간적 거리를 두고 분석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제 업무는 아닌 것 같다”며 영화계에 과제를 던졌다. 다만 “(‘기생충’처럼 빈부 격차를 다룬) ‘괴물’이나 ‘설국열차’와 달리 현실에 기반한 톤의 영화라 폭발력을 갖게 된 게 아닌가 싶다”는 분석을 곁들였다.




오는 26일 국내 개봉하는 흑백판에 대해서는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한 관객이 ‘화면에서 더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했다”면서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연기의 디테일과 뉘앙스를 더 많이 느낄 수 있다”고 관심을 당부했다. 올해 101년을 맞는 한국영화 산업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제가 1999년에 데뷔했는데 20여년간 눈부신 발전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젊은 감독들이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에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홍콩영화가 어떻게 쇠퇴해 갔는지에 대한 기억을 우리가 선명히 가진데, 그런 길을 걷지 않으려면 모험, 영화가 갖고 있는 리스크를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최근 나오는 여러 훌륭한 독립영화들을 보면, 결국은 산업과 좋은 충돌이 일어날 거라고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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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서울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마지막 기자회견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 연합뉴스


봉 감독은 또 작품상 수상 소감에서 언급해 화제가 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이날 편지를 보내온 사실을 밝히며 “쉬어 볼까 생각도 했는데 스코세이지 감독이 ‘조금만 쉬고 빨리 일하라’고 하셨다”면서 “다음 작품 시나리오를 써 나가는 게 영화 산업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서 동상이나 기념관 건립, 생가 복원을 추진하는 데 대해서는 “제가 죽은 뒤에 얘기해 달라”고 웃어넘겼다.

봉 감독의 페르소나인 송강호는 오스카 캠페인에 대해 “지난 6개월은 타인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아 가는 과정이었다”며 “우리 작품을 통해 세계 영화인들과 어떻게 공감하고 소통하고 호흡할 수 있는지, 많은 걸 보고 느꼈다”고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질문에는 “할리우드가 아니라 국내에서라도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13개월째 일이 없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박명훈도 “(영화에서와 달리) 모습이 심하게 변해 있어 미국에서 아무도 못 알아봤다”고 해 웃음을 안겼다.

이선균은 미국 현지 기자회견 당시 “저희가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오스카가 선을 넘었다”고 한 것과 관련해 “우리가 선을 넘은 게 아니라 아카데미가 큰 선을 넘은 것 같더라”면서 ‘기생충’에 4관왕을 안긴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날 자리에서는 시상식 후일담도 쏟아졌다. 한진원 작가는 “충무로는 대학을 졸업한 뒤 아직 사회생활을 하는 곳이라 (각본상 수상 소감에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가 “생각해 보니 충무로에 영화 산업이 많지 않은데 충무로 발언은 상징적으로 이해해 달라”고 설명했다.

이하준 미술감독은 “봉 감독님과 송강호 선배님, 배우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에게 영광을 돌리겠다고 썼다”고 시상식 당시 준비했으나 미처 하지 못한 수상 소감을 소개하며 “본업으로 돌아가 좋은 영화로 찾아뵙겠다”고 말했다. 양진모 편집감독도 “수상 소감을 준비하면 부정을 탈 것 같아 준비하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받지 못했다”고 웃으면서 “좋은 영화로 인사드리겠다”고 했다.

작품·각본상과 달리 하나뿐인 국제장편영화상 트로피를 봉 감독이 제작사 바른손E&A에 줬다는 훈훈한 이야기도 소개됐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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