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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스스로 장르 된 남자…이 모든 걸 합쳐서 ‘봉준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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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개최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날 화제가 된 건 단연 각본상, 감독상, 국제영화상, 작품상까지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이었다. 지난해 5월 제7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시작으로, 몇 달간 이어진 세계 각국의 영화제 및 시상식 대장정의 끝 지점. 각 언론과 대중들이 한껏 축하를 더하고 있는 이 시점에 봉준호와 ‘기생충’에 관한 흥미로운 키워드들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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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nghive 봉하이브

봉준호의 ‘봉 Bong’과 ‘벌집 hive’의 합성어로, ‘벌집 안의 벌처럼 봉준호 감독을 응원한다’라는 의미를 지닌 봉준호 국내외 팬덤을 뜻한다. 그들은 봉준호와 ‘기생충’이 각종 국제영화제에 초대되자 SNS를 통해 저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응원했다. ‘기생충’ 관람 인증샷은 물론, 영화 속 ‘짜파구리’를 직접 만들어 먹거나, ‘독도는 우리 땅’을 개사한 기정(박소담)의 암기송 ‘제시카 징글’을 직접 부르는 영상 등 ‘봉준호’ 관련 게시물에 ‘Bonghive 봉하이브’를 해시태그로 달아 함께 올리기도 했다. ‘기생충’이 북미, 유럽 개봉 초반 입소문 난 것에는 ‘봉하이브’가 한몫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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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d the Oscars goes to PARASITE”

‘오스카의 역사를 새로 썼다.’ 영화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의 92년간 역사상 처음으로 비영어권 영화로서 작품상을 수상했다(또한 65년 만에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황금종려상을 동시에 석권한 영화가 됐다). 그동안 아카데미에선 많은 외국어 영화들이 작품상에 도전했지만, 외국 영화들은 저평가되는 관행이 있어왔다. 앞서 지난 10월, 봉준호 역시 미국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가 상당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오스카 상을 받지 못한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오스카 상은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매우 지역적이지(The Oscars are not 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hey’re very local.)”라고 밝혔던 바. 그래서였을까. 올해 아카데미는 미국 영화계, 더 좁게는 로컬 영화제에 가깝다는 비판에 벗어나고자 외국어영화상을 국제장편영화상으로 변경하고, 역사상 첫 여성 지휘자가 등장하는 등 세계적인 흐름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며 변화를 시도했다. 이제는 그 시작에 영화 ‘기생충’과 봉준호가 함께 서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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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들과의 조우_‘마틴’ ‘쿠엔틴’

올해 국제영화제마다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장면이 있었다. 봉준호와 영화 ‘아이리시맨’의 감독 마틴 스콜세지,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의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셋의 모습이 자주 비춰졌다는 것이다. 세 감독은 올해 이름 있는 영화제마다 수상자 후보에 올랐는데, 그중에서도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는 감독상 수상 후 후보에 오른 4명의 감독들에게 각각 경의를 표하는 소감이 큰 화제가 됐다. 특히 마틴 스콜세지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한 찬사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의 기립박수로 이어져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광경을 연출했다. 그런가 하면 봉준호의 ‘형님’, 쿠엔틴 타란티노는 일찍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에 ‘살인의 추억’ ‘괴물’을 꼽을 정도로 봉준호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광팬이란 점. SNS에선 봉준호가 쿠엔틴 타란티노의 수상 장면을 흐뭇하게 촬영하는 모습이 퍼지며 덕후들에게 공감을 자아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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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의 인연(人煙)이자 성공의 주역들

봉준호는 ‘기생충’의 착상 단계부터 송강호-최우식 배우를 일찌감치 염두에 뒀다고 알려져 있다.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형사, ‘괴물’의 박강두, ‘설국열차’의 남궁민수, ‘기생충’ 기택 역으로 봉준호와 4번째 호흡을 맞춘 배우 송강호. 관객들이 믿고 보는 두 사람의 조합으로, 둘은 ‘호호’ 형제라고 불리기도 한다. 봉준호가 송강호를 자주 캐스팅하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인물의 느낌을 주는 동시에, 그에 앞서 봉준호가 스크린상에 표현하는 바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배우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최우식은 영화 ‘옥자’를 통해 인연을 맺으며, 송강호와 부자(父子)로 나오면 재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기생충’에서 ‘문광’을 연기한 이정은 배우 역시 ‘마더’에서 봉준호와 첫 인연을 맺고, ‘옥자’에서 슈퍼돼지 옥자의 목소리 출연을 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된 바 있다. 봉준호가 꼽은 ‘변태적인 아이디어로 가득 찬 멋진 공동작가’ 한진원 작가는 제3회 할리우드 비평가 협회 시상식(HCA)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고 강렬한 한 마디를 남겼다. “땡큐 카페인, 땡큐 니코틴, 땡큐 H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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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은 조력자 번역가 ‘달시 파켓’, 통역가 ‘샤론 최’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에서부터 호흡을 맺은 번역가이자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 봉준호 감독의 영화뿐만 아니라 ‘곡성’ ‘아가씨’ ‘택시운전사’ ‘마약왕’ 등에서도 번역을 맡은 그는 한국 문화와 정서를 잘 살리기로 유명하다. 특히 ‘기생충’에서는 ‘짜파구리’를 ‘람동’(Ramdong, 라면+우동)으로, 또 ‘서울대 문서위조학과’는 ‘옥스퍼드 문서위조학과’ 등으로 바꿔 미묘한 늬앙스까지 생각한 번역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조력자는 바로 시상식 캠페인 동안 봉준호 감독의 번역을 맡은 샤론 최(최성재). 봉준호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 쉽게 옮기고, 정확한 표현과 적절한 비유를 사용한 그녀의 통역은 외신은 물론, 국내에서도 찬사를 받고 있다. 때론 봉준호의 톡톡 튀는 말맛까지도 매끄럽게 살리며 “언어의 아바타” “그녀가 정말 언어장벽을 파괴하고 있어요. 고마워요”라며 봉준호 감독이 인사를 남기기도. 영화 감독으로 활동 중인 그녀의 영화가 기대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 봉테일, ‘삑사리의 예술(Art of Piksari)’

‘기생충’에서 펼쳐진 공간은 영화의 스토리와 직결돼 있다. 기우(최우식)가 박 사장(이선균) 집을 향할 때 오르는 언덕, 다시 반지하 집에 이르기 위해 내려가는 계단 등 영화에서 보여지는 수직 구조는 두 가족의 사회적 위치를 대변한다. 또 극중 박 사장 집은 유명 건축가가 지었다는 설정으로, 예술적 취향을 고려해 공간적 배치, 소품, 조명 등을 적극 활용하며 리얼리티를 살리는 등 ‘영화의 메시지’를 내포한 다수의 디테일들을 찾아볼 수 있다. 봉준호는 영화를 만들 때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요소를 꼼꼼하게 챙기는 편으로,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란 별명은 유명하다(정작 그는 ‘봉테일’이란 별명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한다). 또 중요한 순간에 일을 그르치게 하는 ‘삑사리’도 그의 영화 속 특징 중 하나. 극중 인물의 어이없는 실수가 극적 전개로 이어지곤 하는데, ‘살인의 추억’에서 사건 현장인 논에 내려오던 구희봉(변희봉) 반장과 감식반원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장면이나 ‘괴물’에선 남일(박해일)이 괴물에게 던질 화염병이 손에서 미끄러져 허무하게 깨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프랑스의 한 영화 잡지에서 봉준호 감독이 “남일이 괴물에게 화염병을 던졌는데 삑사리가 나면서”라고 이야기하자, 그의 단어 선택을 빌려 이런 연출을 ‘삑사리의 예술(L’art du Piksari)’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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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봉준호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인디와이어’) 봉준호 영화는 딱 하나의 장르로 정의하기 어렵다. 초반부에는 웃음을 묘사하는 코미디 같다가도, 어느새 스릴러, 호러로 변해가기도 한다. 한 작품에서 장르가 자주 바뀌고, 뒤섞이며, 경계를 넘나드는 것. 굳이 시퀀스와,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틀을 깨부수며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봉준호의 모습으로, 사람들은 이제 그에게 ‘하나의 장르, 봉준호 장르’라는 찬사를 남긴다.

[글 이승연 기자 사진 CJ엔터테인먼트, ©A.M.P.A.S.Ⓡ., 아카데미 시상식 공식 SNS, 매경DB]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17호 (20.02.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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